어쨌거나, 맨유
2005년 7월 14일, 대한민국 축구계가 떠들썩 할만한,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일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지성 선수가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을 떠나 세계 최고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날이었던 것! 사실 몇 주 전부터 이적 소식은 이미 전해지고 있었지만 정말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지는 못했다. 이게, 된다고?
마법 같은 일이었다. 잘 공감이 안 될 분들을 위해 굳이 표현하자면 BTS의 빌보드 석권, 한강 작가의 부커상 수상 정도의 사건이었달까? 그저 입단식만으로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건 조금 과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
나 스스로 20여 년 전 일을 이야기하며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줄 몰랐으나 당시 언론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난리도 아니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우리나라 선수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마치 세계를 제패했다는 듯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만이 그랬다. 오히려 정반대의 논조로 쓰인 기사들이 많았고 박지성의 맨유행은 실력이 아닌 ‘아시아 지역 마케팅’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다분히 지배적이었다.
당신도 이후의 일을 알고 있을 것이기에 간략히만 언급하자면, 박지성은 스스로 증명했다. 모두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며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다. 누구도 그를 마케팅용 선수였다며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함께 뛴 선수들과 그를 지도한 감독들도 하나같이 말한다. 그는 팀을 위한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고.
“박지성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다. 문제는 그가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전 감독
내가 박지성이란 선수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사실 맨유에서의 활약에 대한 부분인 건 아니다. 맨유에 입단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관해 말하고 싶다. 왜냐고? 우린, 우리에게 찾아올 기적을 허상으로 치부하며 외면해버리는 경우가 너무 잦으니까.
요즘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중에는 적성이고 성격이고 이런 걸 다 배제하고 오직 수입만을 생각하며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걸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니다. 억대 연봉,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큰 금액이니까. 다만 그럴 때마다 난 아이들에게 역으로 묻곤 한다.
“고작 억대 연봉? 수백억, 수천억을 벌고 싶진 않아?”
아이들은 코웃음을 친다. 그런 일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답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한다. 물론 현실적인, 냉정한 접근을 할 필요도 있겠으나 우리 아이들은 왜 삶에 굳이 없어도 될 테두리를 미리미리 단단히 쳐 놓는 걸까?
적당한 예시일지는 모르겠지만 로또에 당첨되려면 일단 로또를 사야 한다. 주말마다 로또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이들은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적어도 그만큼의 설렘이란 걸 안고 일주일을 보내지 않을까? 어차피 안 될 거라며 구매조차 하지 않는 이들에겐 로또 당첨의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굳이 꿈을 크게 꾸고 싶지 않다는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겠으나, 조금은 안타깝다.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감춰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마법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가만히 머물러 있는 이들에겐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꿈을 꾸고, 꿈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기적, 당신에게도 그 기적을 포기하지 말라 말해주고 싶다.
어쨌거나, 맨유는 지성팍이라는 대한민국 최고 선수를 품었고 우린 이후 더 많은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속속들이 등장했고 심지어는 리그 득점왕을 배출하기도 했다. 기적은, 끊임없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떤 종류의 기적이든 그 기적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난 오늘도 비상하기 위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으련다. 푸드득, 푸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