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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Dec 04. 2024

공부 좀 해! 국영수말고 진짜 공부!

<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배우다


동. 1. 새로운 지식이나 교양을 얻다.

     2. 새로운 기술을 익히다.

     3. 남의 행동, 태도를 본받아 따르다.

     4. 경험하여 알게 되다.

     5. 습관이나 습성이 몸에 붙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잊을 수 없는 강의가 있다. 강의명은 ‘문학과 사랑’. 200명이 넘는 대규모 강좌이지만 늘 수강 신청에 학생들이 몰리는 ―‘성의 이해’, ‘대학 합창’에 버금가는― 인기 강좌였다. 아니 그런데 교수님, 발표요? 커리큘럼에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요? 별수 없었다. 듣기 싫으면 나가라는데, 그랬다간 영어 전용 강의를 들어야 할 판인데, 발표 그까이 꺼 가위바위보만 잘하면 자료 정리 담당으로 빠질 수 있거든요? 아뿔싸, 졌다. 남자는 주먹이라는 말을 떠올리다 머리를 한 번 더 써서 보자기를 떠올렸다가 결과적으로는 가위를 냈고 그렇게 발표자가 되었다.

우리 모둠의 발표 작품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라는 영국 작가 로렌스의 애정 소설. 발표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혼자 격분해서는 발표 전날까지 책도 읽어보지 않고 버텼다. 그게 다 무슨 소용. PPT는 이미 넘어왔고 발표자를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서 대충 줄거리만 살펴보고 발표 당일을 맞이했다.

결과는 당신도 짐작할 것 같아 대략적으로만 말해보자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정도로 최악의 발표가 되고 말았다. 200명 앞에서 버벅거리며 줄거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그렇게 ‘문학과 사랑’은 내 기억 속 잊을 수 없는 강의가 되고 말았다.     


덕분에, 성장했다! 실패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아주 모범적인 대학생이었던 난 그 이후로 발표할 상황이 오면 미리 대본을 써서 통째로 외워버렸다. 심지어 농담까지도 완벽하게. 그렇게 내게 ‘자신감’이란 녀석이 들러붙었고 이제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즉흥적으로 말하는 데에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반복적인 경험은 능숙하게 대처하는 기술을 조금씩 습득하게 도와주고 있다.

이걸 제대로 알려주어야 했는데 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비결 따위를 왜 그간 전해주지 못했는지 통탄할 노릇이다.      


수능이 끝나면 대입 모의 면접을 진행한다. 면접 전형이 있는 대학들의 1단계 합격자 발표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고3 담당 선생님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바쁘지만, 뿌듯하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주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불어불문학과에 지원한 신퀴리양(그냥 불어불문학과라 퀴리라고 붙여보았다)은 교내 토론 한마당 우승자답게 막힘없이 질문에 답을 이어나갔다. 심지어 마지막엔 프랑스어를 줄줄줄 쏟아내기까지! 자유전공학부에 지원한 강자전양(자전은 자유전공의 줄임말이다)도 나도 모르게 모의 면접 도중 “합격입니다!”라고 외칠 정도로 모든 질문에 술술 답을 해내었다.


문제는, 모두가 그러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꽤 많은 친구들이 대답은커녕 한마디 말조차도 꺼내지 못하고 아예 벌벌 떨기만 했다. 이건 실전이 아니라 연습인데도……. 이렇게 해서 시험장에 들어가면 면접관의 말이 들리기는 할까, 싶으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단 며칠 새에 갑자기 말하기 스킬이 급상승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특훈에 특훈을 거듭하는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2028 대입 개편안’이 발표되면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더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깊이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으니 간략하게만 설명하면 ‘정시의 수시화’, ‘수시의 정시화’라는 개념이 생긴다고 보면 된다. 수능만, 내신만, 혹은 생기부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100%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듯하다. 내신이나 수능 변별력이 약화되면서 각 대학에서 면접이나 논술 등 자체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실제 수준을 확인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결국 다재다능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공부만 잘하거나, 말만 잘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대학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능력을 한꺼번에 지녀야 한다는 것! 


물론 교과서에 담긴 지식들도 무척 중요하지만 어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진짜 참된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을 대하는 법,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내는 법, 학습한 지식을 실제에 적용하여 활용하는 법 따위가 더욱 중요하다. 그저 문제만 풀어내는 그런 공부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이래저래 아이들의 부담이 커지는 건 사실이지만 새로운 대입 개편안이 실행되면서 ―물론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법 역시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대입 면접에서 받게 되는 질문들은 본인이 살아 온 고교 3년이란 시간에 대한 질문이다. 그저 확인의 절차임에도 그걸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는 건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학교 교육도 바뀌어야 하고 가정 교육도 바뀌어야 하며 대한민국의 교육 역시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 제대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영수 교과서 속 지식들만이 배움의 전부가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살면서 계속해서 배워야만 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라, 삶이 곧 배움 그 자체라는 것.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삶의 단면들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고민은 아마도 교직 생활 내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리고 이 고민을 함께 나눌 당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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