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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Dec 18. 2024

우릴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명. 1.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역량.


     2. 사물의 이치 따위를 알거나 깨달을 수 있는 능력.


     3. 개인이나 단체를 통제하고 강제적으로 따르게 할 수 있는 세력이나 권력.




해마다 겨울이 온다는 건 인사 人事 철이 다가온다는 소식과도 같다. 어른들의 세계에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있듯 우수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그 집단의 성공 여부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만, 그러한 인사 문제가 공정하게 진행되는지는 조금 의문 부호가 생길 수는 있겠다.

학교 현장에서도 교직원 인사 문제는 굉장히 예민하게 작용한다. 업무 간 강도의 차이가 있으므로 편한 자리를 탐하는 이들의 눈치 싸움이 보통이 아니다. 주로 각 학교의 관리자, 그러니까 교장이나 교감이 인사 문제를 주관하는 경우가 짙으므로 그들에게 나름의 로비 lobby를 행하는 이들도 존재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밖에 학연이나 지연, 개인적 친분 등을 반영하거나 집단 안에서 세력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도 숱하다.     

세상 어디에나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자들이 존재한다.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힘 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들을 위해 그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을. 그 힘을 이용해 누군가를 협박하고, 무시하고, 자기 이득만 얻고자 하는 이들은 권력자가 될 자격이 없다. 그렇지만, 비정상이 정상인 듯 돌아가는 어른들의 세계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다들 그러려니 하며,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그냥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산다. ‘받아들인다’라는 것이 어찌 보면 세상살이의 진리인 듯 보이지만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에 교육이란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일부 아이들은 세상의 못된 습성을 먼저 배우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     


“고3인데 교복을 입어야 해요? 공부하느라 불편한데요?”

“제 성적 떨어지면 책임지실 거예요?”     


입시 부담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은 사실 이런 식의 불평불만을 거론할 여유조차 없다. 자신의 떨어진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느라 바쁠 뿐. 환경 탓을 하거나 권리만 주장하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고3이란 시기를 ‘벼슬’로 여기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건 어른들 잘못이다. 그릇된 사회 풍조를 보여 준다거나 제대로 된 교육을 실행하지 않은 탓이랄까.

대한민국 입시 제도가 아이들을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으며 한 명의 어른이자 교육자로서 막심한 책임감을 느낀다. 다만 고3들을 위해준답시고 규칙 위반이나 기타 잘못들을 무분별하게 용인해주거나 예의를 상실한 이들에 대한 질책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 미리 ‘권력의 맛’을 알게 해주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 대학만 잘 가면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방관하는 태도는 그야말로 어른으로서의 자격 상실이다. 어른의 최종 과제는, 좋은 어른을 만드는 일일 테니까.     


다행히 상당수의 아이들은 ‘우릴 포기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줄기차게 내뿜는다. 수능이 끝난 고3 교무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 백미남군과 이미녀양이 불쑥 찾아왔다. 이들은 1학년 초부터 커플이 되었고, 3년 내내 헤어지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둘 다 성실하고 똑똑한 데다 인성도 바른, 미래가 기대되는 친구들이다. 커플답게 선생님이 되겠다는 같은 꿈을 꾸고 있기도 하다. 하여간에 둘이 교무실에 찾아와서는 대뜸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쌤, 여기 쓰레기통 저희가 분리수거 해도 될까요?”

“응? 교무실 쓰레기통을? 너희가? 왜?”      


돌아온 답은, 이래저래 업무로 바쁜 선생님들께서 고생하시는 것 같아 이런 거라도 해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건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 하나둘 함께하는 아이들이 더 늘어났다는 점! 아이들은 웃으며 즐겁게 교무실 곳곳을 정리해주었고 덕분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흐뭇해졌다.     


아이들은,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린 그들을 포기해선 안 된다! 정말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회에 나가서도 타인에게 그 사랑 받을 수 있도록, 늘 꾸준히 묵묵하게 가르치고 다그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말로는 아이들을 사랑한다면서 그저 원하는 대로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는 행위는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어른의 역설이다. 권력이란 무분별하게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고, 희생하기 위한 도구임을 일깨워 주는 참된 교육에 대한 열망이 어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혀야 한다.     


아이들은 좋은 어른이 될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어른들이여, 우리의 최종 과제를 이행하자. 다름 아니라, 좋은 어른을 만드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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