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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Mar 19. 2024

이 별에서의 애도

김혜순, 「또 다른 별에서」

 김혜순의 시 세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시집의 표제작인 「또 다른 별에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표제작인만큼 시인의 세계가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이 시에서도 기표의 고정을 거부하며 시인의 주관적 왜곡을 통해 감정을 드러낸다. 이하는 시의 전문이다.     


 죽은 어머니는 늘 돌아오시대.

 여린 하늘의 살갗이 찢기우고,

 구름 저편 그 언덕이 천천히

 피에 젖는 황혼녘

 죽은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시대.     

 새가 날던 이 별에 밤이 오고,

 두 손으로 어머니 피를 받아

 불을 지피면

 내 작두 밑으로 수천 개

 별들이 굴러오대.     

 수천 개 별들이 굴러와서 갈라지고

 갈라져서 하얗게 흩어지면

 구름 저편 그 언덕, 별을 줍던 아이들은

 노래하대. 갈릴레오 갈릴레이 잠들었느냐.

 가없는 하늘가로 별을 던지며

 갈릴레오 갈릴레이 노래를 불러라, 소리쳐 부르대.     

 죽은 어머니는 늘 돌아오시대.

 부지런히 돌아오시대

 풍로 하나 안고 어둠 하나 지펴서

 늘 돌아오시대

 네 가슴 골짜기 그 푸른 팽이를 던지거라.

 갈릴레오 갈릴레이 내 아들아

 죽은 어머니는 노래하시대.     


「또 다른 별에서」 전문.     


 표면적으로는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정서처럼 읽힌다. ‘내’와 ‘죽은 어머니’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계속 살펴보았듯, 김혜순 시인은 시인의 주관에 따라 단어를 초월하여 의미를 변용한다. 그러한 시 세계의 특징을 간과한다면 ‘죽은 어머니’ 그뿐만 아니라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 운율만을 위한 활용으로 착각할 수 있다. 물론 “묘사의 구문에서 삭제되기 쉬운 리듬을 가미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은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죽은 어머니’와 ‘갈릴레오 갈릴레이’라고 고정된 기표는 다른 무엇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죽은 어머니’는 여린 하늘의 살갗이 찢기우고 / 구름 저편 그 언덕이 천천히 / 피에 젖는 황혼녘’에 돌아오신다. 그때 돌아오는 이유를 다음 연의 마지막 행, ‘별들이 굴러오대’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별’을 보기 위해 ‘밤이 오고’ 돌아온다. 화자가 객관적 상관물로 끌어온 ‘별’은 ‘노래하대. 갈릴레오 갈릴레이 잠들었느냐.’를 통해 의미가 확장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계속해서 맴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다. 태양 주변을 계속해서 도는 지구와 별을 보기 위해 계속해서 돌아오는 ‘죽은 어머니’의 이미지는 유사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죽은 어머니’는 무엇을 노래하는가? ‘내 아들아’를 외치며 ‘잠들었느냐’라는 물음을 노래한다. 여기서 ‘잠’도 단어 그대로의 수면보다는 3연의 ‘구름 저편 그 언덕, 별을 줍던 아이들은’이라는 맥락 속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죽은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죽은 어머니’와 죽은 아들은 왜 만나지 못하고 해 질 무렵에만 아들을 찾아오는가? 왜 시의 제목은 공간의 단절을 암시하는 ‘또 다른 별에서’인가?


 자식을 잃은 부모를 칭하는 말은 없다고 한다. 부모의 슬픔을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표현해야만 한다면, 그 부모는 죽은 부모와 다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로서의 죽음과 죽음만큼의 상실을 겪었기에 죽은 것과도 같은 부모로서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를 해석한다면, 아들의 ‘죽은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어머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작두 밑으로 수천개 / 별들이 굴러오대.’는 죽은 아들을 만나기 위한 제의로도 보인다. 또한 ‘부지런히 돌아오’시고, ‘늘 돌아오시’는 이유도 이러한 아들을 위해, 애도하기 위해서로 볼 수 있다. “성공한 애도는 계속해서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 그 ‘연속적인 진행형’을 유지해야 한다. 애도가 완결되면 결국 애도는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에 끝끝내 망자에 대한 기억과 그를 잃은 슬픔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김혜순은 애도라는 방식으로 죽음을 환기시킨다.”


 한편, “‘시는 여성적 장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형식적 장르로 출현하는 여성시 개념을 주장”한 시인의 특성상, 이 시가 단순히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넘어, 사회적 타자인 여성에 대한 사유로 변용하여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 시인은 역동적 여성의 시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시는 단순히 개인적인 ‘어머니’로서의 삶을 다루는 것이 아닌, 더욱 확장되어 어머니로 표현되는 여성의 상실 전반을 다루는 시로도 읽힌다.


참고문헌

오규원, 「방법적 드러냄의 세계」, 『또 다른 별에서』, 시집 해설, 문학과 지성사, 1981.

임희선, 『김혜순 시 연구 – 죽음과 현실수용의 양상을 중심으로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20.

최선교, 『김혜순 시론 연구: 여성시의 형성과정과 시적 양상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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