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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Feb 07. 2022

청년 안드레아와 황제 아우렐리우스
그리고......

나의, 로마로 가는 길 : 제2화

로마에 온 지도 열흘이 넘었다. 시간은 참으로 쏜 살만 같다. 딸의 결혼식을 기다리며 나는 그간 무얼 하고 살았나? 


거의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숙소인 아파트에서 가까운 바티칸 광장, 그 광장에서 바로 바라다보이는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 그 성 앞을 흐르는 테베레 강(Fiume Tevere) 주변을 산책했고 돌아오는 길엔 재래시장에 들러 하루 이틀 먹을 것들, 먹음직한 연어며 문어며 냉동 안 한 돼지고기며 싱싱한 상추, 치커리, 날씬하게 긴 무 등을 사 오곤 했다. 물과 포도주나 다른 먹거리 장은 동네 까르푸나 작은 상점에서 봤다. 또한 이태리어 공부도 간간이 하고 한국에서 올 때 가지고 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한두 페이지 읽기도 했다. 로마든 부산이든 우리네 인간이 살아가는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먹고 마시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소망하고 낙담하고,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것. 


어제 펼친 『명상록』엔 이런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죽음이 지척에 있다.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동안 선한 자가 돼라.’  

   

이 같은 말은 철학자로서 위대한 로마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가 한 것이라서 돋보이기도 하는 것이지만 사실 이런 생각, 이런 각성을 한두 번쯤 안 해 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가까운 누군가가 갑자기 병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든지, 우연히도 참혹한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든지 하면 우리는 문득, 어쩔 수도 없이 깨닫는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선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나약한 존재. 그 진실을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할 수 있는 동안 선한 자가 돼라’는 불멸의 가르침도 아주 밀쳐 버리게 되는 것이리라. 저 옛날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황제께서 21세기 로마에 와 있는 필부인 내게 한 방망이 더 내려친 까닭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이다.  


‘네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은 곧 소멸할 것이다. 그것이 소멸하는 것을 보고 있는 자들도 곧 소멸할 것이다.’    

  

찬란한 시작이라 할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삶의 무상함을 생각한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제행무상(諸行無常)’….. 그러나 정녕 무상하기에 딸은 꼬맹이에서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고 어느 날 로마로 왔고 생각지도 못한 청년을 만났고 이제 결혼도 하게 된 것이다. 그다음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소망해 본다. 


딸과 딸의 반려자 로마 청년 안드레아가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동안 선한 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그제는 큰딸과 안드레아가 우리 아파트로 차를 몰고 와서 나, 아내, 작은딸과 저녁밥을 함께 먹었다. 아내가 준비한 저녁 차림은 무, 시금치, 가지, 당근, 고추장, 참기름 등이 들어간 비빔밥과 닭 양념구이. 부산에서 가지고 온 김장 김치는 물론이고 인천 소래 포구 어시장에 주문한 오징어젓갈에 청어알젓도 있었다. 로마 청년 안드레아는 나물 비빔밥도 김치도 ‘아주’ 좋아한다. 좋아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로마에 올 때 아내는 부추김치에 깻잎 김치까지 가져왔는데 우리가 권한 깻잎을 궁금한 표정으로 오물오물 먹고 난 안드레아는 말했었다. “색다른 맛이네요.” (한국 말로가 아니라 ‘Other taste’, 영어로) 그 한마디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맛이 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다르다’고 말할 줄 안다는 것, 차이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미덕 아닌가.


그제도 그랬다. 오징어 젓갈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눈을 크게 뜨곤 ‘좋아요’ 하길래 내가 그 맛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자 잠시 가만히 생각하더니 ’조금 달고 조금 짭짤하네요’라고 했다. 로마에 온 첫날 저녁엔 큰딸은 소고기 샤부샤부를 준비했고 아내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양념 곱창을 구웠었다. 야채 생채도 했다. 우리나라 곱창은 큰딸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그것도 안드레아는 잘 먹는다. 그렇다고 그가 이것저것 많이 먹는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소식주의자에 가깝다. 큰딸의 말에 따르면 먹는 걸 잊어버리고 일을 할 때도 많다고 했다. 며칠 전 큰딸의 집에 가서 김밥을 같이 만들어 먹을 때 아래층에서 재택근무를 하다 잠시 점심을 먹으러 올라온 안드레아는 오전 내내 일하고 배가 고플 텐데 많이 먹으라는 아내의 말에 이렇게 말했다. ‘먹다 보면 비로소 배가 고팠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어요.’ 


어찌 들으면 어린 시절 배가 고팠던 건 아닐까 할지 몰라도 그건 아니다. 그냥 검소하고 소박한 것이다. 옷도 잘 안 사 입는다는 게 큰딸의 전언이다. 검박함. 이 또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만 보자면 안드레아는 개인의 자유를 무정부적으로 실현코자 했던 에피쿠로스보다는 아무래도 자연의 질서와 일치하는 삶, 금욕과 극기를 통해 자기완성을 추구했던 스토아 철학자 아우렐리우스의 피를 물려받은 것도 같다. 황제는 또한 말했었다. “소박함과 겸손함을 지니고, 미덕과 악덕의 중간에 있는 것들에 무관심함으로써 너를 빛나게 하라.” 이탈리아 청년은 바람둥이라는 속설이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그냥 속설일 뿐이라는 걸 그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쨌거나, 딸과 안드레아는 어떻게 만났고 둘의 만남으로 부산과 로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저간의 몇몇 대목들을 떠올려 본다.


큰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제가 원하던 한국의 한 여행사에 취직을 하고서 이탈리아, 그것도 로마로 발령받아 우리나라를 처음 떠난 것은 2016년 2월 초. 안드레아라는 이탈리아 청년과 사귀게 되었다는 연락을 처음 해 온 것은 그해 겨울쯤이었다. 이탈리아어를 빨리 배우고 싶어 로마 청년들의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고 그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날 허락을 받고 거기로 달려갔다고 했다. 그게 인연이었다. 첫날 만난 청년들 중 하나가 바로 안드레아였고, 나중에 서로 가깝게 된 후엔 둘 다 첫눈에 뭔가 왔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이런 걸 두고 ‘인연’이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나도 막 그랬다) 실은 인연만큼 어정쩡하고 허튼 말도 없다. 만나는 것도 인연이고 못 만나는 것도 인연, 세상만사 인연 아닌 게 어디에 따로 있을 쏜 가. 


아무려나, 이런저런 인연으로 나와 아내가 그를 직접 만나러 로마로 날아간 것은 2017년 1월 초였다.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 그냥 친구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사윗감으로 여기는 게 당연해져 버린 나와 아내인지라 우리는 로마에 간 김에 안드레아의 부모도 만나 볼 작정을 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는 만나지는 못했다.) 

    

청년 안드레아와의 첫 만남에서 우선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매우 명랑한 친구라는 사실이었다. 명랑함은 낙천성, 능동성과 친연성이 있다. 아까 나는 근검한 그에게서 스토아주의적 풍모를 느꼈다고 했지만 타고난 듯한 그의 명랑성은 어디에서 왔는지가 나는 궁금했었다.  


두 번째로 좋았던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인생철학이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저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로마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나, 아내, 큰딸, 작은 딸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된 안드레아는 내게 마치 면접시험을 치르는 지원자처럼 말했었다. 아직 큰 딸에게 정식으로 청혼한 것도 아닌데…! 하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나는 큰딸이 대학생이 되고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할 무렵부터 기회가 난다 싶으면 짐짓 던져보는 식으로 한마디 하곤 했다.

      

“너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로서 나는 네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중요한 한 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딱 한 표지만 무시해선 안 되는 표. 네 평생 동반자가 될 사람은 너 외에 나 하나쯤은 통과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딸은 “무슨 소리야, 아빠는 늘 네 인생은 네 것이라고 가르쳤으면서!” 하며 펄쩍 뛰며 나를 힐난하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나는 “뭐 그렇다는 거지 마음엔 두지 말어.” 정도로 피해 나가고는 했지만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 나로선 쉽게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강요할 수야 없는 일이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굳건했다. 


딸아이가 이국에서 남자 친구라고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인종차별주의, 신나치주의 따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면엔 그와 선이 닿는 어떤 이념의 신봉자라면? 한국 청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가 일베나 태극기 부대 아류는 아닐지라도 약육강식적 경쟁논리나 능력주의가 내면화되어 있거나 자본주의적 상업주의나 소비문화에 절로 물들어 있다면? 혹여 은연중 돈이 생의 목적이 되어버린 한심한 돈 많은 녀석이거나 권력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똑똑한 바보라면…? 


그런 것쯤은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이 우리 딸에게 있다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의 맹목의 열정은 그야말로 맹목의 힘을 발휘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또한 무상한 것으로서 아우렐리우스의 충언대로 ‘운명’이고 ‘보편적 자연’의 일부라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날 나는 안드레아에게 물었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진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대답은, 마치 준비라도 해 둔 사람처럼 즉각 나왔다.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날 동석을 했던 작은딸은 한참 지난 후에야 내게 말했었다. “안드레아의 그 말을 들으면서 소름이 좀 돋았어요. 어떻게 그런 질문에 금방 그렇게 답할 수 있느냐 말이에요.” 정말 그랬다. 나 역시 은근히 놀랐고 또한 기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큰딸은 안드레아에게 ‘네가 나와 결혼을 하려면 우리 아빠를 통과해야 해. 너를 만나면 철학적인 질문도 하시게 될 거야.’라고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때도 안드레아는 무슨 질문이든 대답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던가.  

    

큰딸도 두어 번 얘기한 바 있지만 안드레아의 그런 삶의 철학이랄까 하는 것은 이탈리아식 교육이 큰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내 앞에서도 어린 시절에서 고교시절에 이르기까지 가족과 함께 한적한 해변에서 보낸 여름 바캉스를 아름답고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회상한 적이 있다. 숙제 같은 것 하나 없이, 꼭 해야 하는 일 하나 없이 그냥 심심하게 그냥 자유롭게 바닷가에서 대양과 모래밭과 푸른 하늘과 구름, 불어오는 바람과 보낸 텅 빈 시간과 텅 빈 공간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명랑함과 낙천성, 능동성 그리고 삶에 대한 어떤 성찰이 나오지 않았을까? 

     

“나의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나는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로 시작하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부모, 개인 교사, 여러 훌륭한 벗들에 더해 신들까지 호명하며 그들 하나하나의 은혜와 보살핌에 힘입어 자신은 이러저러할 수 있었음을 낱낱이 밝혀 놓는다. 이에  힘입어 나도 ‘나의, 로마로 가는 길’ 이번 이야기를 다음처럼 끝맺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해량해 주었으면 좋겠다.  

      

큰딸의 멋진 벗이자 생의 동반자인 로마 청년 안드레아 덕분에 나는 나부터 ‘르네상스(renaissance)’ 해야 할 명랑함과 낙천성의 아름다운 덕목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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