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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Feb 09. 2022

천사여, 천국이여

나의, 로마로 가는 길 : 제3화

어제도 아침을 먹고 난 후 산책 차 바티칸 광장을 지나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 쪽을 향하는데 노숙자 거지가 또 눈에 들어왔다. 그예 보살심이 동한 아내는 손가방에서 동전을 찾았지만 나는 그냥 지나쳤다. 


어쩌란 말인가. 천사여, 어쩌란 말입니까?

 

천사의 성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미카엘 대천사 조각상을 바라다보며 나는 혼잣말 비슷한 것을 했다. ‘최초이자 마지막 기독교도’인 예수와는 너무도 멀어져 버린 당대 기독교도들의 ‘나약한 동정심’에 대해 맹공을 퍼부은 니체도 생각났고 우리가 당연히 옳다고 여기는 시혜나 자선 행위자의 위선적 내면을 깊이 통찰한 바 있는 미국의 아나키스트 사회사상가이자 농부인 리 호이나키도 생각났다. 

     

'천사의 성'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대 노숙자-거지여, 당신은 천사입니까, 나를 시험하러 온 악마입니까……?   

   

나로선 오래된, 현재진행형의 물음의 하나다. 하지만 로마에 온 후 나의 첫 숙제는 딸의 결혼식 때 신부의 아버지로서 해야 하는/하고 싶은 덕담의 원고를 이탈리아어로 준비하는 일이었다. 천사나 악마의 문제는 밀쳐 둬야 하는 형편이라 할 것이다. (오, 덕담 쓰기와 같은, 그저 내 그릇만큼 정성만 다하면 그만인 작고도 소중한 일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딸은 내게 로마 시청이 지정한 한 성당에서 올릴 공식적 결혼식은 20여 분 안에 끝이 나기 때문에 내 덕담은 하객들과 점심을 같이 하는 피로연 자리에서 할 수 있을 거라고도 알려 주었었다. 

      

이탈리아어는 쥐꼬리만큼 밖엔 못하면서도 현지 하객들에 대한 예의로서 꼭 직접 이탈리아어로 감사와 소감의 말을 싶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선택지는 있었다. 그것은 내가 한국어로 쓰고 나서 딸에게 이탈리아어 번역을 부탁하는 것. 하지만 객지 처지에 만삭의 몸이 된 딸도 딸이려니와 안드레아도 최근 옮긴 회사 일 처리하랴 결혼식 준비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너무나 눈에 훤했다. 그러므로 내 손이 내 딸, 내가 하는 게 아무래도 마땅했다. 천만다행으로 ‘파파고 번역기’ 시스템에서 일하는 ‘생각하는 기계’, AI는 생각 이상으로 매우 똑똑했다. 이것도 내겐 하나의 발견이었다. 파파고에 의지해 내 손에서 원고가 완성되면 딸이나 안드레아에게 필요한 교정을 부탁할 요량은 물론 해 두었다. 

     

나는 안드레아에게 묻기도 했다. “결혼식 날 피로연 자리에서 내가 한마디를 하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피로연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몰라서였다. 그는 예의,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시간과 관계없이 편히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모범 정답 같은 대답을 했었다.

     

그거야 어려울 건 없었다. 하객 모두에게, 특히 안드레아 부모에게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딸이 로마 청년과 결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는 것,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며 나는 지금 너무 기쁘다는 걸 고백한 다음, 새 신랑 신부에게 당부의 말을 한 두 마디 하는 것으로 끝을 맺으면 될 터였다. 앞부분은 그렇게 써 나갔다.    

   

다만 나는 한 가지 욕심이 있었다. 그것은 이탈리아-피렌체의 위대한 시인 단테의 시를 몇 구절 인용하고 싶은 것이었다. 혹 젊은 하객들에게는 고리타분하게 들리지는 않을까, 잠깐 생각도 해 본 거지만 안드레아는 그건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무튼 나는 덕담의 말미 부분에서 단테를 호출한 것인데, 그 어름의 대목은 이렇다. 

 

    

나는 너희들이 고난에 처했을 때 위대한 시인 단테의 이러한 말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Lascia dir le genti; sta comme torre ferma, che non crella già mai la cima per soffiar di venti

(뭇사람들이 뭐라든 말하게 내버려 두고, 부러지지 않는 굳건한 종탑처럼 서라, 바람이 아무리 심하게 불더라도.)    

 

또한 단테는 노래했구나.      

Del paradiso ci sono rimaste tre cose ; I fiori, I bambini e le stelle.

(천국은 우리 주위에 세 가지 모습으로 남아있으니 그것은 바로 꽃과 어린이와 별들이로다.)   

  

단테의 이 같은 아름다운 시 구절 덕에 덕담을 다음처럼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머나먼 이국의 옛 대시인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꽃과도 같고 별과도 같은 두 사람이 또 다른 천국인 아이와 함께 내내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또 다른 천국인 아이’는 바로, 아직은 큰딸의 뱃속에서 하품도 하고 발길질도 한다는, 새 신랑·신부의 첫 딸이자 나의 첫 손녀인 다프네 지안 스타라체 (Dafne Ji-an Starace). 덧붙이자면 ‘지안’은 한자로는 ‘智安’으로서 세컨드 네임이자 한국 이름의 하나로 딸이 진작 지어둔 이름이다.  

   

천국은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또한 천사는……?   

  

어제 나는 ‘천사의 성’을 등지고서 테베레 강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잠깐 생각에 빠졌었다. 애초 로마 황제들의 무덤으로 쓰였다가 요새 역할도 한 어떤 성이 ‘천사의 성’으로 명명된 것은 6세기 말 로마에 창궐한 흑사병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흑사병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연일 신께 기도를 올리던 당시 교황은 어느 날 어떤 강렬한 환영을 보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황제들의 무덤 성 상공에 나타난 미카엘 대천사의, 칼을 칼집에 다시 꽂는 광경이었다. 교황은 이를 신께서 역병의 재앙을 거두기로 하신 증표라고 선언하고는 미카엘 대천사가 현현한 황제들의 무덤 성을 스스로 ‘천사의 성’으로 불렀다는 것이 신화적 역사가 전해 주는 이야기다. 


시쳇말로 하면 믿거나말거나라 할 것이다. 하지만 ‘신께서 역병의 재앙을 거두기로’ 하신 것은 그 재앙으로 인간이 스스로 참회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라는 신화적 해석 혹은 신학적 의미부여마저 의미 없는 허튼소리라 여겨도 좋을까?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를 두고 적지 않은 이들은 그것이 우리의 무한 욕망, 지구 착취, 인간 중심의 환경 파괴 따위가 빚어낸 죄과일지도 모른다며 ‘참회’의 시간 같은 걸 가지기도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잃어버린 파라다이스는 신의 존재 증명이자 영원한 선물인 꽃과 아이와 별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단테는 노래했다. 어찌 꽃과 아이, 별들뿐이랴. 신이라면 실로 모든 곳에 편재해 있을 터이고 천국은, 또한 천사는 늘 우리 가까이에만 있을 것인데 (그렇지 않다면 대체 어디에 있을까?) 오늘도 나는 속절없는 눈뜬장님임을 면치 못하곤 한다...... .      

  

딸의 결혼식 날엔 두 눈을 활짝 뜨고서 나는 나의, 우리의, 천국을, 천사들을, 한 가슴에 안을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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