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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Feb 13. 2022

하늘나라로 띄우는
로마 결혼식 이야기 (1)

나의, 로마로 가는 길 : 제4화

어머니, 오늘 당신의 사랑하는 손녀 주희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로마에서 로마 청년 안드레아 하고요. 어머니께서 늘 한 번은 만나보고 싶어 하신 그 ‘착하고 미남인 우리 안드레아’ 하고 말입니다. 


보고 계셨지요? 하늘나라는 높고 높은 곳이라 하늘 아래 보이지 않는 곳은 없을 테니까요.  또 하늘나라는 마음의 나라여서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가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아침 9시 반, 약속대로 신랑·신부와 사돈 내외를 태운 밴 승용차는 우리(저와 아내, 작은 딸 소희) 숙소인 아파트로 달려왔습니다. 바깥사돈은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저를 보자마자 제가 맨 머플러가 자기 것과 똑같다면서 어린애처럼 활짝 웃기부터 하시더군요. 그러고 보니 저와 안드레아도 둘 다 푸른 체크 줄무늬의 넥타이를 하고 나왔더랍니다. 야, 역시 이 결혼은 하늘이 점지한 인연이야, 하는 말이 절로 나올 판이었다고 할까요? 


차에 오르니 안사돈은 제게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묻더군요. 나는 “정말 좋습니다.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그랬으니까요. 안사돈도 나의 ‘기적’이라는 말에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으시더군요. 결혼식장인 한 성당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 모두는 내내 하하 호호했답니다. 신랑·신부, 우리 내외, 사돈 내외 또 그날 신부 측 증인도 되어야 하는 둘째 딸 소희까지 모두 일곱 ‘가족’이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결혼식날 아침 풍경이었습니다.  

     

사돈 내외가 어떤 분인진 2019년 가을 저와 아내가 로마에서 상견례 비슷한 것을 하고 돌아와서 한두 번은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바깥사돈 페데리코는 나보다 아홉 살이 많고 안사돈 엘리사벳은 나와 동갑인데 두 분 다 쾌활하고 인정이 많으신 분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주희를 너무나 예쁘게 보고 아껴주고 또 좋아하는 게 한눈에도 훤해서 여간 마음이 놓이는 게 아닙니다. 만날 때마다 정말 좋은 분들이라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안드레아 부모님을 처음 만난 그날 서로 오갔던 재미난 대화도 좀 이야기해 드리고 싶네요. 그때 저는 양복 윗도리 깃에다 작고 예쁜 하늘색 한반도기 배지를 꽂고 있었는데 그걸 발견한 페데리코가 ‘나 그것 안다’고 하시길래 저는 물었답니다.  

    

“한국에 대해 좀 아시는지요?”

“모르는 게 없소. (그는 영어로 ‘All’이라고 했답니다.)    

 

순간 저는 좀 멈칫, 했는데 그 짧은 대답은 자존심이 상해 되받아치는 듯한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다음 순간 누구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문제는 핸드폰의 구글 통역기에 있었다는 걸 다들 알아챘기 때문이지요. 인공지능은 제 말을 이탈리아어로 ‘네가 한국에 대해 뭘 알아?’ 쯤으로 처리해 버린 것입니다.     

 

오해랄 것도 없는 오해는 금방 풀렸기 때문에 저는 바깥사돈과 베란다로 나가 같이 담배를 한 대 태우면서 (애연가인 페데리코를 위해 저도 사양하지 않고 맛나게 한 대 했지요) 또 물었습니다.  

    

“내 딸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걸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세 가지쯤?”

“세 가지……? 하나도 없소이다. (이 역시 영어로 ‘Nothing’)”

“……!”    

 

하하하. 허허허.  아까의 ‘All’과 운을 맞춘 재치 있는 농담이었지요! 우리는 참 기분 좋게 웃었는데요, 그런 다음에야 페데리코는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희는 착하고 친절하고 또 정말 예쁘지요.”    

 

‘과찬입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군요. 언어 장벽이 문제이기도 했지만 저는 아무래도 조금 마음이 들떠 있었을 겁니다. 나는 우리의 이런 대화를 거실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했고 그래서 또 한 번 웃음보가 터졌더랬습니다. 

    

결혼식과 피로연 이야기를 빨리 전해드려야 하는데 자꾸 다른 옛날 일이 떠오르네요. 딸 주희에 관해서 말입니다. 

        

요즘 청년들은 비혼주의자도 많고 그게 흠이 될 수가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주희는 비혼주의자완 거리가 멀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든가, ‘나는 결혼하면 아이를 네 명 낳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름을 지을 거야’ 농담인지 아닌지 그런 말을 슬쩍 한 적도 있었답니다. 대학생 시절 약간 힘을 실어 한 말 중에는 ‘난 한국 남자와는 결혼 안 할 거야’도 있었다는 것도 저는 기억합니다. 또 있습니다. ‘결혼을 하더라도 난 한 열 명 정도의 남자는 만나 보고 할 거야…….’ 


그런 씩씩한 모습이 일단은 보기에 좋았습니다. 하지만 자식 앞에서는 노심초사가 운명인 아비로서는 저러다가 아픈 이별의 고통을 많이 겪어 행여 새로운 만남의 가치 자체를 의심하고 지레 터부시 하게 되진 않을까, 일말의 걱정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건 기우였습니다. 로마에 간지 일 년도 안 되어 안드레아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둘은 점점 일편단심이 되어갔던 것이니까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만난 지 5년이나 되는 동안 둘 사이에 티격태격 갈등이나 굴곡의 때가 어찌 없었을까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런 것들도 ‘비 온 뒤 땅 굳는다’는 속담의 진실을 확인시켜 주는 그런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로마 시청이 지정한 산타 마리아 인 템풀로(Santa Maria in Tempulo)란 이름의 소박한 엣 성당 건물에서 진행된 결혼식은 짧고 간명하게 끝이 났습니다.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에 맞추어 혼주인 제가 신부를 느린 걸음으로 이끌어 신랑에게 ‘인도’(이런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네요)하자 시장을 대신해 결혼식을 주재하러 온, 제복 비슷한 차림의 여성 공무원은 어떤 규정에 따른 건진 몰라도 식을 착착 진행했지요. 그런데 모두 이탈리아어로 하고 통역자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는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나 아내나 그저 단상 쪽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지요. 하지만 이윽고 여성 공무원이 뭐라고 뭐라고 하자 신랑과 신부가 차례로 “Si”(네) 하는 것만은 분명히 들렸답니다. 

      

이어서 (아니 실은 그 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신랑·신부는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키스를 하고 어떤 서류에 서명도 했지요. 신랑과 신부의 증인으로 곁에 서 있던 안드레아 남자 친구와 둘째 딸 소희도 그렇게 했고요…… 그러는 동안 주위를 잠시 살펴보니 안드레아의 부모, 페데리코와 엘리는 눈물을 훔치다가 환히 웃다가를 거듭하고 있었더군요. 그 모습을 보자 제 가슴이 순간 뭉클했습니다. 


저와 당신의 둘째 며느리 ‘박 선생’은 안 울었느냐고요? 하하. 아내도 저도 눈물은 안 났습니다. ‘둘이 드디어 저렇게 결혼식을 올리는구나’ 감격스럽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마음이 좀 짠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담담했답니다. 사실 어머니도 알고 계셨다시피 신부 주희는 만삭의 몸, 오늘처럼 결혼식이라는 통과의례를 하지 않더라도 둘은 이미 오랫동안 둘도 없는 하나였으니까요. 앞으로 한 달 여 후에 태어날 제 손녀를 보면 저도 아내도 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당신께서 눈에 띄게 쇠약해져 병원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던 작년 여름은 물론이거니와 그로부터 두어 달 후 막내딸 집에서 구순의 나이로 마지막 숨을 고이 거두신 가을 어느 날의 그 순간에도 당신의 손녀딸 주희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꼼지락거리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과 탄생, 탄생과 죽음. 꽃은 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종내 지기도 한다는 것. 별은 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종내 뜨기도 한다는 것...... 생각하면  우리네 생은 늘 무궁무진하고 참으로 신비롭기만 합니다. 이런 진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망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결혼식 중에 울진 않고 혼자 떠올린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영화에서 본 가톨릭 성당에서의 결혼식 장면입니다. 예의 신부님은 신랑·신부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신랑/신부 아무개는 아무개를 남편/아내로 맞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든 때나 변함없이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고 아껴줄 것을 하느님 앞에서 맹세합니까?’   

   

그러면 신랑과 신부는 각각 “예”라고 대답하지요. 저는 이 같은 결혼서약의 장면/말을 생각할 때면 절로 눈물이 솟구치곤 합니다. 


안드레아와 주희는 가톨릭교도가 아니어서 신부님이 아니라 로마 시청 공무원 앞에서 “예”라고 대답하게 되긴 했어요. 하지만 ‘건강할 때나 병든 때나 변함없이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고 아껴줄 것'을 속으로 다짐했을 안드레아와 주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해야 하는 여느 진실한 가톨릭 교인의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게 틀림없습니다. 


세례명은 안나이고 작년 10월 청명한 가을날 가톨릭 군위 묘원 한 자리에 생명이 다한 육신을 눕히신 어머니, 당신도 방금의 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그렇지' 하시겠지요? 


이젠, 결혼식이 20여 분만에 후딱 끝난 후 성당 바깥에서 한참 사진을 찍은 이야기며 안드레아의 친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얘기며 정오에서 무려 오후 5시경까지 이어진, 시내 한 식당에서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피로연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인데, 어머니, 밤이 너무 깊어버렸군요.  

       

그래도 첫 편지라서 한 가지는 더 말하고 싶습니다. 이 편지의 맨 위의 사진에 대해서입니다. 사진은 오늘 결혼식이 있은 성당 건물을 바깥에서 찍은 것입니다. 어머니도 '이게 로마에 있는 성당이라는 거냐'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겉에서만 보면 또 우리가 익히 아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비롯한 여타 웅장하고 화려한 로마 성당들에 비하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당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성당 겉모습이니까요. 결혼식 이틀 전날엔가 주희, 안드레아와 함께 '사전 답사'(!)를 하러 갔을 때 저도 내심 좀 실망을 했었답니다.  


주희에게 들어보니 거기에도 사연이 있었습니다. 애초 로마 시청에서는 결혼식 장소로 세 군데를 제시하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답니다. 그중에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저 유명한 캄피돌리오 광장의 대성당도 포함되어 있었고요. 문제는 로마의 심각한 주차난이었습니다. 늘 붐비는 캄피돌리오 쪽을 선택하면 하객들은 주차 때문에 쩔쩔매게 될 게 뻔했기 때문에 그에 비해 주차가 훨씬 수월한 장소를 택하다 보니 그리된 것이라는 겁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성당 주변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주위를 둘러보니까 우리에 이어 다른 한쌍도 거기서 결혼식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와서 왁자지껄하고 있더군요. 실은 그 성당은 지금은 미사도 안 드리는 그냥 옛 성당 건물로서 시청이 결혼식장으로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답니다.  


 이젠 정말 펜을 놓아야겠습니다. 다음 편지를 기약하며 이만 총총하렵니다. 지금 로마의 밤하늘에도 총총할 별들을 생각하면서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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