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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Apr 28. 2024

캐나다 정치의 꽃, 국회의사당

캐나다 수도 이야기 2

2015년, 총선에서 쥐스탱 트뤼도는 불과 43세의 나이로 자유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몬트리올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역시 총리였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는 결혼을 아주 늦게 했는데, 첫 번째 총리 재임기에 무려 29살이나 어린 배우 마가렛 싱클레어와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았다. 젊고 잘생긴 데다 트뤼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그가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자 언론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 정치가 이토록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은 적이 또 있었던가?" 


영국연방의 국가답게 캐나다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의 원칙은 물론 존재하고, 영국 국왕의 대리인인 총독도 있지만, 국회의사당이야말로 캐나다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타와 강가 언덕에 자리 잡은 팔러먼트 힐(Paliament Hill)에는 캐나다 국기만 빼면 유럽의 고성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서 한 해에 약 3백만 명의 관광객을 맞는다. 유감스럽게도 2002년에 시작된 레노베이션으로 본 건물은 2031년 완공 예정으로 공사 중이어서 의회는 주변 다른 건물들에 임시로 들어가 있었다. 

공사 중인 국회의사당 본관

캐나다 연방 정부는 원로원 격인 상원과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원제를 채택하는 것은 연방정부만이고 각 주는 하원만 운영한다) 상원과 하원은 서로 견제하에 상대방이 발의한 법안을 거부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국민의 대표인 하원의 결정에 불복할 상원의원은 많지 않다. 물론 상원의원들도 법안을 발의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하원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실질적으로 하원이 상원보다 권한이 훨씬 크다. 

총독(Governer General)의 역할은 더 애매하다. 원래는 영국인들이 왕을 대신해서 캐나다 총리에게 조언을 하는 자리지만 형식적일 뿐이고 명예직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점차 여성이나 소수 인종을 상징적으로 선발하고 있다. 현재 총독은 퀘벡의 누나빅(Nunavik)에서 온 이누잇 족의 대표, 메리 사이먼이다.


상원 (Senate of Canada)

회가 중에는 누구나 위층에서 참관할 수 있다

오타와에서 가장 비싼 호텔, 페어몬트 샤토 로리에 건너편에 있는 상원 의회 건물을 못 보고 지나칠 뻔했다. 원래는 기차역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한다. 캐나다의 상징인 붉은색의 카펫에 단풍 무늬가 들어있다. 원래 종신제였지만 현재는 75세가 정년이다. 하원은 18세 이상 국민이라면 피선거권이 있지만 상원은 30세 이상으로서 대표하려는 지역에 $4000 이상의 자산이 있어야 한다. 지원한 사람들 중에 총독이 임명하는데 총리의 추천을 거치기 때문에 사실상 상원마저도 총리가 좌우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샤토 로리에 호텔, 도깨비 소유라는 퀘벡 시티의 샤토 프롱트낙과 같은 회사다
여성의 참정권을 얻어낸 Famous Five의 동상
헤리에타 에드워드, 넬리 맥클렁, 루이즈 맥키니, 에밀리 머피, 아이린 팔비. 'Famous Five'  또는 'Valiant Five(용감한 5인)'로 불리는 이 다섯 명의 유명한 여성은 1927년, 영연방의 북미 식민지법에 명시된 '사람(persons)'에 여성도 해당이 되는지를 대법원에 청원하면서 캐나다 정치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캐나다 대법원은 법조문의 'He'라는 대명사를 들어 기각했지만, 영국 대법원에서 persons란 남녀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1930년 첫 여성 상원의원이 탄생한다. 
캐나다 최초의 여성 의원, Cairine Wilson

하원 (House of commons)

임시로 설치한 지붕 아래 캐나다 정치의 역사가 펼쳐진다

캐나다 최고 권력인 하원은 이상한 곳에 자리 잡았다. 멀쩡한 건물을 지나 표지판을 따라간 그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 정원 위에 천장을 달아 만든 천막 같은 공간이었다. 메인 빌딩 공사가 끝나면 철거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곳도 상원과 마찬가지로 위 발코니는 일반인들이 참관할 수 있게 만들어졌고 통역을 위한 헤드폰이 갖춰져 있었다. 캐나다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아마도 전원) 영어와 불어를 모두 할 수 있는데, 의회에서는 영어와 불어는 물론 어느 언어로든 발언할 권한이 있단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확인봤다. "한국어로 해도 되나요?" 그러자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웃으며 출마해 보라고 한다. 


캐나다의 역대 총리 중 마침, 최근에 타계한 브라이언 멀로니의 초상화가 첫 번째로 보였다. 오타와를 방문하던 3월 말 당시 몬트리올에서는 그의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퀘벡 출신의 멀로니는 1984년에서 93년까지, 재임기간 동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고 소비세(GST)를 도입하는 등 경제 면에서 큰 역할을 했던 총리로 평가받던 사람이었다. 오래전, 서점에서 자서전 사인회를 하던 그를 우연히 본 적이 있어 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건물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둥근 방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이름을 적은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다 보일 수 있도록 아침마다 페이지를 하나씩 넘긴다고 한다.

Book of remembrance

메이스(Mace)

Senate of Canada 사이트의 메이스 사진

서기가 앉는 가운데 책상에는 붉은색 작은 쿠션이 두 개 놓여 있었다. 회의를 시작할 때마다 가져다 놓는 메이스를 위한 자리란다. 원래 두 개 있었는데 1916년 화재로 하나는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를 가지고 양쪽이 모두 사용하는데, 의회를 지키는 무기를 상징한단다. 이 메이스를 회장으로 가져오고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경위관(Sergeant-at-Arms)이다. 전통적으로 캐나다 군인이 맡아왔지만 2006년부터는 연방경찰(RCMP) 출신이 임명되었다.


정부에서 무료로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는 상원과 하원 외에도 오타와에는 캐나다의 의회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머시브 체험관(Immersive Experience)이다. 

공짜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영상이나 구성의 퀄리티가 훌륭했다. 사방의 벽과 중간중간 놓인 반원형의 스크린에는 국회의사당 본관 건물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이 될지, 캐나다의 정치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되는지, 그리고 캐나다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이고 어떤 미래를 지향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렇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하루였다.


* 이 모든 투어는 캐나다 국회 홈페이지 parl.ca에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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