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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May 02. 2024

시카고의 여름
Retold by Nate Smith

이 한 곡의 추억

"어머, 지혜야, 왜 우니?" 

뒤뜰의 부엌문이 열려 있어서 그만 들켰다. 외갓집에 숨을 곳이 없어서 뒷마당으로 가던 길이었다. 

미국 사는 둘째 외삼촌이 오셔서 모처럼 모여서 저녁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길가 쪽의 담장은 얕았지만 아래는 언덕이어서 자칫하면 낡은 벽돌이 떨어질까 어른들은 걱정하셨다. 할아버지는 때로 칠면조를 키우고, 앞마당 가득 토란이 자랐다. 감나무에 가득 감이 열리면 하나라도 더 따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맨 위에 있는 건 까치밥이라고 하셨다. 서울역 뒤쪽 서부역 건너편, 허름한 동시상영 극장이 있었고 그 옆으로 오르막길이 있었다. 꼭대기에 야간 상업고등학교가 있어서 저녁이면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은, 아니 언니들이 수업이 끝나면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하며 고단한 삶을 잊고 웃음꽃을 피웠다. 분명 시내 중심가인데도 길은 좁고 집들은 낡아서 이삽십 년은 더 전의 동네 같았던 그곳에 내 어린 시절의 한 자락이 묻었다.


나는 레고가 갖고 싶었다. 또래의 사촌형제들에게는 레고를 사다 주신 삼촌이 내게 주신 장난감은 버튼을 눌러서 물속의 고리를 끼우는 단순한 것이었다.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공 차는 걸 좋아했던 나는 서운해도 왠지 불평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삼촌은 당황하셨지만 나는 너무 어려서 그게 삼촌을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못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시카고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와 한 살 차이 나는 사촌이 반겨주었다. 시카고는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운하를 끼고 크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솟아 있었고, 오대호는 바다 같았다. 어느 뒷골목에서 알 카포네가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오래된 미국의 도시를 생각하고 있었던 내가 무색해졌다. 사촌은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듯이, 자기 아버지인 삼촌의 사정을 설명했다. 시카고 시내에서 멀리 사실뿐더러 어머니가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 뵙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삼촌의 상황을 이해할 만큼 커져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안 있어 내 사촌은 숙모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삼촌은 그 해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Life goes on. 네이트 스미스의 'Retold'를 들었을 때 마치 시카고의 한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연상되었는데, 나중에 찾아본 뮤직 비디오를 보니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먼 옛날 같은 어린 시절이, 흐릿한 삼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슬픈 건지 행복한 건지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 들어 눈을 감는다. 아빠가 그리워졌다.


Retold by Nate Smith (YouTube c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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