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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Jun 04. 2020

중국판 막장 무협 드라마

천룡팔부 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막장드라마는 몇몇 작가들이 쓰고 주로 매일 아침 또는 매일 저녁 식사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다. 삼각관계, 사각관계, 출생의 비밀, 시한부, 불륜 등 각종 자극적인 소재들을 가져다가 어떻게든 시선을 끌어 온다. 처음부터 봐도, 중간부터 봐도, 자극적이고 재밌는 드라마가 어쩌면 막장 드라마가 아닐까.


  김용 소설 중에서 최고의 막장극을 자랑하는 작품은 역시 <천룡팔부>가 아닐까 한다. 왜 그런지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이 작품은 특이하게 주인공이 3명이다. 대리국(지금의 베트남 부근) 왕자 단예. 개방 방주 교봉, 그리고 소림사 스님 허죽. 초반부는 단예와 교봉이 번갈아가면서 나오다가 나중에는 허죽까지 등장하고, 세 명의 각각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졌다가 다시 갈라지고, 세 명 모두 나름의 결말을 맺는, 일반적인 무협 소설과는 사뭇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교봉은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천룡팔부는 북송 시대(수호지보다 앞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개방은 정의를 수호하고, 송을 수호하는 그런 정의로운 거지들의 문파로 설정되어 있다. 그의 무공은 개방 방주만 익힐 수 있는 강룡십팔장과 타구봉법인데, 자꾸 주변 인물들을 해치고, 개방을 배신한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누명을 씌운 배후를 쫓던 교봉은 자신이 한인이 아닌, 거란인으로 교봉이 아닌 소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했지만 그를 사랑하던 아주가 대신 죽고, 이후 아주의 동생인 아자를 돌보게 된다. 거란으로 돌아가 야율홍기에게 의탁하게 되고, 결국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 자신이 나고 자란 송나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허죽은 소림사 스님이다. 작품 중반부가 되어서야 처음 등장하는데, 그냥 평범한 소림사 승려1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소요파의 소성하가 연 바둑 묘수 풀이대회에 참여하게 된다. 단예와 모용복 등 바둑의 고수들마저 풀지 못한 문제를 바둑의 'ㅂ'도 모르는 허죽이 풀어내게 되고, 그는 소요파 장문 무애자의 모든 내공과 무공을 전수받아 소요파의 장문(한 문파의 우두머리)가 된다. 소요파 장문이 되면서 천산동모와 이추수의 싸움에 말려들어 결과적으로 그녀들의 내공과 무공까지 전부 전수받아 최고수에 다다른 허죽은 자신이 소림사 승려임을 잊지 않고 소림으로 돌아갔다가 뜻밖에도 자신의 어머니가 사대악인 중 둘째인 섭이랑이고, 아버지는 무려 소림방장인 현자대사임을 알게 된다. 소림 장문의 사생아라니.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는 막장이라고 부르기 밋밋해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준비했다. 작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인물. 바로 단예이다. 2013 버전 드라마에서 슈퍼주니어 출신 김기범 배우가 단예 역을 맡기도 했는데, 대리국 황제의 동생인 단정순의 아들. 즉, 왕자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다. 무공에 자질은 뛰어나지만 서책을 좋아하고 무공에 관심이 없었던 단예는 황궁을 뛰쳐나와 놀다가 무량산 신선곡에서 미녀 석상을 보고 천 번의 절을 한다. 그렇게 기연을 얻어 북명신공(소오강호에서 임아행이 배우는 흡성대법은 북명신공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과 능파미보라는 경공법(보법)을 배운다. 


  단예의 수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종영을 만나 여동생처럼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종영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런 관계였다. 즉, 배다른 여동생이었던 셈! 종영과 단예가 위기에 빠졌을 때 목완청이 단예를 구해주기도 하는데 알고 보니 목완청도 단예의 배다른 여동생이었다. 심지어 교봉의 그녀인 아주와 아자 자매 또한 단예의 아버지 단정순의 자식이었다. (다행히 아주와 아자는 단예와 엮이지 않는다.) 


  서역의 고승 구마지가 대리국을 찾아 온다. 친구 모용박을 위해서다. 모용가문은 세상 모든 무공을 수집하고 있는데, 그가 죽자 단씨 가문의 무학인 육맥신검을 모용박의 영전에 태우기 위해서다. 마침 육맥신검을 익힌 단예를 잡아다가 모용복의 아버지 모용박의 묘소에 바치려고 한다. 납치되어 모용세가가 위치한 연자오에 갔다가 모용복의 사촌 동생 왕어언을 본 단예. 왕어언의 미모가 무량산 신선곡의 미녀 석상과 똑같아 사랑에 빠진다. 이제 좀 감이 오실 것이다. 그렇다. 왕어언도 단정순의 딸이다. 이쯤되면 단예가 대단한건지 단정순이 대단한건지, 아니면 작가인 김용 선생이 대단한건지 착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반전이 있었으니, 나중에 단정순과 단예의 어머니가 죽게 되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단예는 단정순의 아들이 아니라 사대악인의 수장이자 대리 단씨의 또 다른 혈통인 단연경의 아들이라고 말이다. 결국 종영, 목완청, 왕어언 모두와 단예가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무협 소설이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소설. 천룡팔부. 색깔이 서로 다른 세 주인공의 하모니가 좋았던 작품을 한 번쯤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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