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 편
부산에서 출발한 휴가는 거제, 통영을 거쳐 진주에 도착했다. 진주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7시나 되었을까. 통영 터미널에서 버스로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렸다. 어두운 저녁이지만 유동 인구가 제법 많았다. 주변에 찜질방을 찾을 수 없어 터미널 뒤 허름한 여관을 찾았다. 모텔급도 아닌, 바닥에 전기장판과 이불만 놓여 있고 옛날 TV를 구비하고 화장실, 욕실도 방과 떨어져 있는 곳을 축제 기간이라고 3만 원을 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런 환경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짐을 풀고 여관을 나섰다.
시내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고 진주교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유등 축제를 어디서 하는지 몰라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이동했다. 이윽고, 남강에 닿았다. 남강이 생각보다 강폭이 넓어서 그런지 뭔가 유등 축제가 웅장해 보였다.
서울에서도 이런 축제를 본 적이 없어서 자뭇 신기하기도 했다. 밤에 하는 거라곤 어렸을 때 부모님 손을 붙잡고 가본 야시장과 대학 축제가 전부였는데, 유등 축제라니. 강 전체가 등으로 도배가 되었고, 강 양쪽으로도 온갖 종류의 등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강에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매력이 있는 축제였다. 임시로 설치해놓은 부교를 따라 강 양 편을 건널 수 있는데, 1000원을 받았다. (이날 부교 통행비만 3000원을 썼다.)
유등 축제를 구경하며 남강을 따라 천수교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진주성 쪽으로 올라가 구경을 했다. 진주성 안쪽까지도 각종 등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성답게 조선 시대 병사들 모양이나 성, 망루 등의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선했다. 그리고 재미도 있었다. 2시간 정도 천천히 걸으며 구경을 하고 여관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런!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다. 덕분에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전기장판을 튼 채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해야만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씻으려니 따뜻한 물이 잘 나온다. (어제나 좀 잘 나오지...) 퇴실을 하고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후에 버스를 타고 진양호로 향했다. 오랜만에 자연과 마주하니 공기도 좋고 머릿속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양호는 얼핏 춘천에서 보았던 소양댐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조금 덜 인공적이다. 덜 인위적이고 조금 더 자연친화적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다시 진주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진주성을 구경했다. 밤에 본 진주성과 낮에 본 진주성은 확연히 달랐다. 소풍 온 유치원 꼬꼬마들이 많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밤에 비해 확실히 유동 인구가 적었다. 덕분에 한가하게 밤과 낮을 비교해가면서 천천히 성 내부를 구경해볼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이 왜적과 맞서 싸웠던 진주성. 또한 기생 논개가 왜란 당시 왜군 장수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던 진주성. 유등 축제 때문에 발걸음을 했지만 진주성은 그 나름의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채 그렇게 나를 반겼다.
몇 년 후였을까. 가을밤이 다 지나갈 즈음, 청계천 등 축제를 보러 갈 일이 있었다. 유등 축제를 생각하며 잔뜩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실망만 간직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진주의 남강에 비해 청계천이 너무 비좁은 데다가 인구는 더 많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생각했다. 차라리 이걸 한강에 하면 어떨까. 하지만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강은 너무 넓다. 혹시 청계천 말고 양재천이나 안양천 같은 곳에서 등 축제를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