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편
숨가쁘게 달려왔다. 부산에서 출발한 나홀로 여행. 휴가는 어느덧 남해에서 출발해 순천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야경을 보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지에선 대부분 해가 지고 나면 할 일이 없어 도시에서 도시를 이동할 땐 주로 밤에 이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게 남해에서 순천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여행 최초로 모텔이란 곳에 입성했다. 여관(진주에서의 장급 여관)이나 게스트하우스보다 비쌌다. 그래도 혼자라고 5천 원 깎아주셔서 되게 좋은 모텔에서 잘 쉴 수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여수 엑스포로 인해 여수, 순천에 새로운 숙박 시설이 많이 생겼고, 내가 묵은 모텔도 그 중 하나였다.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하고 내가 처음 간 곳은 순천만이었다. 갈대밭을 보기 위해 갔는데 자연사 박물관처럼 박물관에서 고대 물건들을 잔뜩 본 느낌이다. 여긴 아이들과 같이 오면 좋을 듯 싶다.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나서 유람선을 타고 순천만 일대를 돌아보는 코스가 있는데 유람선은 과감히 패스. 갈대밭을 지나 전망대까지 올라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각보다 갈대의 크기가 크지 않았는데, 가뭄으로 인해 갈대가 많이 자라지 못했다고 했다. 갈대가 생각보다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마저도 작은 거라니! 언젠가 기다란 갈대를 보러 올 수 있겠지?
분명 논인데 저렇게 벼의 색을 다르게 하여 글씨를 새겨 놓았다. 역시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못 해낼 것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전망대를 오르는데, 생각보다 전망대 높이가 높지 않은 데도 가는 길이 힘들었다. 이제는 사무실에 매일 앉아만 있어서인지 저질 체력이 되어버린 탓일까. 헉헉대면서 간신히 주 전망대에 도착해 순천만 구경을 하다가 다시 나와 버스를 타고 순천만 정원으로 향했다. 참고로 이 곳과 정원은 한 곳만 표를 사도 두 곳 모두 갈 수 있고, 정원까지 이동이 가능한 스카이큐브(케이블카와 비슷한 느낌?)도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필자처럼 혼자 다니는 뚜벅이는 버스가 효과적이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스카이큐브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서른 넘은 남자 혼자 순천만 정원에서 꽃놀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광경이지만 당시만 해도 거리낌없이 진주에서 산 셀카봉을 장착하고 룰루랄라 사진을 찍으며 정원 구경을 했다. 아마 꽃 피는 봄에 방문한다면 더 예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천만 정원 구경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드라마 촬영장이었다. 이곳은 시간 관계상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드라마 덕후인 내가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60년대, 70년대 거리를 재연해내면서 여러 옛날 배경의 드라마 촬영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옛날 거리를 충실하게 잘 만들어낸 것 같았다. 심지어 달동네도 만들어져 있는데 오전에 순천만 전망대를 올라가느라 체력 소모가 많았던 탓에 중간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아마 도중에 거기에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잠들어도 될 것처럼 잘 만들어진 곳들이었다.
순천 터미널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여수도 가보고 싶었지만, 다음 날 친구 신군의 결혼식이 있어 부랴부랴 올라가야만 했다. 신군과는 대성리와 해남 땅끝마을을 함께한 인연이 있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버스에 자리가 없어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앉았다. 청산도 쪽을 친구분들과 여행하다가 헤어져 먼저 서울로 올라가시는 길이라며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느낌이 은퇴한 선생님 같았다. (나중에 여쭤보니 맞았다!) 덕분에 여행의 마지막까지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며, 다음엔 꼭 여수를 가보겠노라 다짐했다.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