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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Nov 19. 2020

무령왕릉의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충남 공주 편

  부산에서 출발하여 순천에서 마감한 휴가 이듬해는 아예 일주일을 부산에서 오롯이 부산 국제 영화제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봄에는 처음으로 전주 국제 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그래서 그해 가을. 부산 영화제 대신 다시 여행을 떠나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9월의 마지막 날 시작된 휴가 첫날 미드 정주행. 둘째 날 친구들과 광란의 술파티. 셋째 날 숙취를 거쳐 휴가 넷째 날인 월요일 오전. 여행을 떠났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내가 고른 곳은 공주였다. 사실 공주는 고3 때 가 본 적이 있다. 당시 꿈이 공주사대여서 수시와 정시 두 번 입시 면접을 위해 공주를 간 적이 있었다. 수시 땐 어머니와 갔고 정시 땐 친구 김군과 함께 갔다. 그리고 둘 다 공주사대는 못 갔다. 하하하. 그로부터 15년 즈음은 지난 어느 날. 그렇게 나는 버스를 타고 공주로 향했다. 두 시간이 조금 걸리지 않아 도착한 공주는 많이 변한 느낌이었다. 큰 건물이 많아졌달까. 이젠 정말 도시가 되었다. 터미널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무령왕릉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웅진 백제 역사관이라는 큰 건물이 나를 반겼다. 안으로 들어가면 송산리 고분군으로 이어진다. 유료다. 거기서 무령왕릉 내부를 정밀하게 복원한 모형을 감상할 수 있다. 기타 여러 유적들을 보면 박물관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왕릉 내부는 연꽃 모양이 그려진 벽돌이 겹겹이 쌓여 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옛날에 어찌 그리 정교하게 잘 만들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모형뿐이었다.


  옛날에는 무령왕릉 내부도 관람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이미 예전부터 무덤 내부 훼손을 우려해 안을 구경할 수 없게 막아놨다. 아마 그래서 이 곳으로 오는 길에 있는 역사관 등에 무덤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그래도 무령왕릉과 주변 고분들을 따라 걷자니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할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왕릉 내부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무 생각 없이 무령왕릉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정지산 유적으로 향했다. (이때부터였다. 본격적인 하이킹이 시작된 것은.) 낮은 산도 산이라고 오르니 제법 힘들었다. 2년 전보다 더 허약해지고 녹슨 신체 곳곳이 힘들다고 아우성을 쳤다. 정지산은 무령왕과 왕비의 왕릉이 만들어질 때까지 시신을 임시로 보관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사실 그곳이 더 좋아 보이긴 했다. 금강이 내려다보여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조상님들은 배산임수를 최고의 지리로 여겼으니 말이다.


  정지산에서 무령왕릉 반대쪽 산길을 따라 내려가니 국립 공주 박물관이 있었다. 후문으로 들어온 셈이다. 야외 전시장에 전시된 유물들을 구경하고 기획전시실로 향했다. 마침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지정 1주년 기념 특집전으로 무령왕에 대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몇 년 전 미륵사지에서 구경했던 것과는 또 다른 유물들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물론 비슷한 것들도 있었지만 부장품들이나 나막신에 도깨비방망이처럼 앞에 바늘이 달린 신발은 새삼 신기방기 했다.


  박물관까지 구경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공산성으로 향했다. 도중에 카페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있자니 흐릿하던 날에 해가 쨍 떴다. 


  공산성 입구로 올라가는 길에 묘비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살짝 무섭더라. 공산성 입구에 들어서니 내부 공사를 하고 있어서 성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진정한 하이킹은 시작도 하지 않았음을.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와 함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오르막이 꽤 많았고, 생각보다 성이 넓었다. 그냥 성 중앙으로 갈걸. 하는 후회 따윈 늦은 다음이었다. 



  이 길을 거꾸로 올라왔다면 아마 세상을 하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려가는 길이 편한 것은 아니다. 내려가는 다리에 체중이 실릴 때마다 무릎이 무겁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결국 절반 조금 넘게 성벽을 따라 가장 먼 코스로 걷다가 도중에 성 내부를 통해 빨리 공산성 관광을 마쳤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 터미널까지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강변에 자란 핑크 뮬리(당시엔 많이 알려지기 전이어서 그냥 저게 뭔가. 이쁘네. 싶었다.)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결국은 하루 종일 걷다 보니 해도 떨어지기 전에 이미 퍼져서 더는 움직일 힘이 없었다.


  저질체력을 한탄하며 나는 다음 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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