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편
공주에서 넉다운이 되어 버스를 타고 부여 터미널에 도착했다. L사 패스트푸드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극장에 갔다. 우리가 흔히 가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아닌, 매점에서 돈을 주고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2관짜리 옛날식 극장이었다. 거의 국민학교 이후 처음 가보는 이런 극장. 레트로스러웠다. 마침 극장에서 상영해주는 영화는 <아수라>였다. 명품 배우들의 향연 속에 영화가 끝나고 부소산성 근처에 한 모텔에 자리를 잡았다. 허허. 하필 모텔 방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지금 같으면 방을 바꿔달라고 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나에겐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첫째, 쥐가 나오면 어쩌나. 둘째, 저 구멍에서 수면가스가 나와 나를 기절시키고 장기를 떼가면 어쩌나. 결국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잠을 청했고,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이튿날. 근처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부소산성에 올랐다. 산책로와 같은 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낙화암에 도착했다. 탁 트인 풍경이 나를 반겼다.
삼국시대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부여). 그리고 부여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삼천 궁녀는 백제가 멸망한 이후 이 곳, 낙화암에서 모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일화로 기억되는 곳이다.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이렇게 산길이 좁은데 어떻게 3000명이나 되는 궁녀들이 떨어졌을까. 줄 서서 떨어지면 하루 종일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강이 깊다 해도 3000명이 모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오만 가지 생각이 들더라.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반대쪽으로 내려오니 고란사라는 작은 사찰이 나왔다. 여기서 편도 유람선을 타고 다시 부여 시내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내 커피집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박물관 등지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마침 10월 4일. 전날이 개천절이면서 월요일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보통 박물관 등이 월요일 휴관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다음 날 휴관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오늘이 휴관 날인 것이다. 박물관은 포기하고 정림사지를 구경했다. 약간 익산 미륵사지와도 비슷했다. 벌써 5, 6년 전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정림사지를 한 바퀴 돌자니 시간이 좀 걸렸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면서 나는 다음 목적지로 신동엽 생가를 정했다. 그렇다. '껍데기는 가라.'의 그 신동엽 시인의 생가가 이 곳 부여에 있었다. 마침 동기인 이박사(당시 대학원생)가 시 전공이었기에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생가에 도착을 했다. 맙소사! 이 곳도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오늘 휴관이었다. 젠장. 덕분에 그냥 생가가 여기 있구나. 구경만 하고 돌아서야 했다.
시내 마지막 관광지는 궁남지였다. 궁 남쪽의 연못이란 뜻의 궁남지는 큰 연못과도 같았다. 소풍 나오신 분들도 꽤 많았다. 이렇게 연못 한가운데는 다리를 건너 들어가 볼 수 있는 정자(?), 누각(?)이 있었다. 옛 조상들이 이런 곳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따라서 여유를 조금 즐기다가 다시 터미널 근처로 돌아와 능산리 고분군으로 향했다. 서울 버스와는 달리 방송을 해주지 않아 핸드폰 지도의 GPS를 통한 내 위치 확인과 기사님께 물어보기 신공으로 간신히 능산리에 도착했다.
그래도 여기는 공주 무령왕릉과는 달리 들어가 볼 수 있는 고분이 존재했다! 신기해하면서 고분 안을 구경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고분을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령왕릉에서 못 들어가 본 한을 이렇게 풀 수 있었다. 천마총처럼 안이 넓지는 않았고, 간신히 1, 2명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던 것 같다. 10월임에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능산리 고분군을 한 바퀴 돌며 구경하고 나니 엄청 더웠다. 입구의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버스 시간을 물어본 후, 매점 구경을 하다가 버스를 타고 논산 시내로 갔다.
부여에서는 전라도 쪽으로 가는 버스가 많이 없어서 논산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정읍으로 향했다. 저녁에 사촌 형과 저녁을 먹고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에 미친 듯이 태풍이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