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 편
고창 선운산에서 광주에 가는 버스를 타고 어느덧 나에게 익숙한 도시, 광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터미널인 유 스퀘어에도. 도착해서 바로 담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렇게 2, 3시간을 버스에서 보내고 나서야 담양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쉽지만 담양 터미널에서 메타세콰이아 길로 가는 대중교통을 찾기가 어려워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도착하니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군대 동기들과 갔던 모습과는 약간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프로방스 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더 상업적인 관광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게다가 10년 전과 다르게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 데 요금을 받았다! 이것도 10년 전엔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10년 전이라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하고 메타세쿼이아 길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널찍한 길 좌우로 나란히 펼쳐진 높다란 나무들이 나를 반겼다. 도심에서의 찌든 때가 말끔하게 씻겨져 나가는 느낌이랄까? 이번 여행은 많이 걷기만 했는데 이 길을 걷는 느낌은 또 달랐다.
그래도 평일이라서 비교적 사람이 많이 없었고, 나름 괜찮은 사진을 건져낼 수 있었다. 만세!
10년 전에는 담양에서 대나무 축제를 할 때 방문했었다. 그래서 메타세쿼이아 길도 사람이 많았지만 죽녹원은 상상 이상이었다. 덕분에 결국 죽녹원 구경을 포기했었는데, 이번엔 꼭 가보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때, 내 눈에 메타세쿼이아 길과 죽녹원을 연결하는 길이 보였다. 관방제림이었다.
마침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곳이 있었다. 약간 허름해 보이는 자전거였지만 냉큼 빌려서 관방제림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죽녹원 쪽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은 시골길이었는데 군데군데 경치가 좋은 곳이 많았다. 혼자 다닐 때야 죽녹원에 가야 하니까 빨리 이동해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가족과 함께 간다면 천천히 걸어 보거나 2인용 자전거를 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죽녹원에 도착했다. 대나무가 푸르른 정원인 죽녹원. 순천만 정원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하늘 높이 뻗어 난 대나무들이 어딘지 모르게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때로는 대나무가 빽빽이 겹쳐진 저 너머로 나가면 다른 차원의 세상이 있을 것만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물론, 내게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나무 숲을 지나 한참을 지나다 보니 판다 모형이 여기저기 있었다. 판다가 대나무를 먹는 데 착안한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었을까 싶다. (물론 쿵푸 팬더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한참을 걷다가 잠시 누워서 쉬다가 다시 걷다 보니 소쇄원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조광조를 스승으로 모셨던 양산보라는 사람이 낙향하여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 드라마 <가면>과 예능 <1박 2일>의 촬영지로도 사용될 만큼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에 손이 갔다. 평일 늦은 오후, 해 질 녘에 손을 꼭 잡고 죽녹원을 거니는 노부부였다. 왠지 설레는 느낌이 들었다. 연세가 제법 있으신 두 분은 때론 뒷짐을 지며, 때론 손을 잡으며 천천히 산책을 하셨다. 내 걸음이라면 당연히 금세 앞서 나갈 수 있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늦추며 노부부의 뒤를 따라갔다. (스토킹은 아니다. 하하하) 나도 언젠가는 저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결혼 생각이 없었던 내가 보기에도 너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였을까. 이 여행이 끝나고 1년 뒤. 노부부처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여행이 현재까지 내 마지막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