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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Nov 04. 2020

내 생애 최고의 풍경을 보다.

경남 남해 편

  진주에서 유등 축제를 보고 들어오던 저녁, 매일 찜질방 또는 허름한 여관에서 자던 나는 한 가지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게스트 하우스! 마침 남해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서 급하게 예약이 가능한지 전화로 물었다. 가능하다고 해서 예약을 하고 2만 원을 입금했다. 여관보다 싸다니! 


  다시 시계를 돌려, 진주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터미널에서 남해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남해에 도착해 버스 시간표를 사진으로 찍어 놓고 버스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제법 꼬불꼬불 오래가더라. 그리고 자칫 지나쳤을지도 모를 정류장에 무사히 도착해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남자 도미토리가 있었는데 꽤 컸다. 그리고 그날 남자 손님은 나 혼자였다. 그래서인지 첫 게스트 하우스 숙박은 그냥 혼자 놀다 잠든 게 다였다.


  다음 날 아침, 아침을 먹으러 갔다. 게스트 하우스는 보통 토스트나 시리얼을 제공하는데, 하하. 그랬다. 나는 토스트기를 써본 적이 없다. 하하하. 덕분에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 토스트를 직접 만들어주셨다. 계란 프라이도 덤으로 말이다. 아침 일찍 토스트를 먹고 또 한 번 친절한 사장님은 내가 차가 없음을 알고 보리암 밑의 주차장까지 데려다주셨다. 밑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보리암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20명 정도 타야 출발한다고 한다. 평일이었다. 20명이 언제 찰 줄 알고 기다리나. 그래서인지 주차장 주변에 택시들이 있었다. 7, 8000원이면 올라간단다.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다행히 어디 학교에서 단체로 오신 선생님들이 셔틀버스를 탔다. 만세! 단번에 20명이 다 찼다. 그렇게 나는 보리암까지 편하게 올라갔다.


  보리암에 올라서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흔적이 남은 영응기적비를 구경하고 보리암을 지나 상사암 쪽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꽤 불었다. 절만 있는 건 아니었는지 관우상을 보기도 했다. 이윽고, 나는 엄청난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속이 탁 트이는 풍경이었다. 지금까지 다녀 본 수많은 여행지 속에서도 이 곳에서의 풍경은 단연 최고였다. 물론 아직 가보지 못한 수많은 더 멋지고 웅장한 풍경이 있겠지만, 그래도 남해 보리암에서의 이 풍경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지치고 삶에 찌든 영혼조차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었다.


  보리암에서 내려올 때도 셔틀버스를 탈 걸 그랬다. 등산로가 있어서 그쪽으로 내려가는데 거의 2시간가량 걸렸다. 심지어 얇은 운동화를 신고 말이다. 이후로는 장기 여행을 다닐 때면 주로 등산화를 신는 편이다. 산 밑에 내려가 매점에서 끓여주는 라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버스를 타고 미조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아마 미조항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미조항에서 다시 남해의 반대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독일 마을로 향했다.


  사실 남해에 온 목적은 보리암보다는 독일 마을이었다. 그래서 기대도 잔뜩 했다. 마침내 독일 마을에 내렸다. 사람이 많더라. 그리고 집들이 예뻤다. 그냥. 예뻤다.



  오전에 둘러본 보리암이 너무 아름다워서였을까. 아니면 독일 마을의 집들이 생각보다 덜 아름다워서였을까.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산임수의 풍수지리가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명당자리일뿐더러 집들 하나하나가 좋았으니까. 다만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내 집을 어떻게 찾을까라는 고민이 남았다. 


  독일 마을은 힘들었던 과거,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집도 유럽식으로 지었고, 마을 이름도 독일 마을이다. 마을 안쪽에는 독일로 파견되었던 광부, 간호사들에 대한 기념관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여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국제시장>이 갱봉을 했는데, 이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주인공 황정민은 광부로, 그와 결혼했던 김윤진은 간호사로 등장해 극 중 독일에서 만나 결혼을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문득 독일 마을이 생각나기도 했다.


  남해에서의 여행은 금산 보리암과 독일 마을을 보는 것이 다였다. 워낙 이동 거리가 있어서 여행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확실히 자차가 없으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산에서 진주에 이르기까지 잘 사용하던 교통카드도 남해에서는 쓰지 못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만큼 힘들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해의 금산 보리암의 풍경. 거제 외도와 더불어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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