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태석 Apr 20. 2024

부산에서의 결혼식(Live)

축하드려요, 목사님.

나는 지금 부산이다. 다시 서울에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며, 한 잔의 커피와 함께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집을 나섰다. 노트북과 이북 리더기, 핸드폰까지 알차게 챙겨서 나왔지만, 아뿔싸. 보조배터리가 없다. 어젯밤 충전한 노트북으로 넷플릭스나 볼까 생각했는데, 보조배터리가 없으니 테더링을 해서 보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어쩌나 고민을 해봐도 별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부산까지 오는 기차에서 이북 리더기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다. 그마저도 생각보다 짧았던 탓에 역방향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부산에 도착했다.


결혼식장은 부산역 근처의 어느 큰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마침 비가 와서 우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신부 측에 계신 목사님과 사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목사님께서는 내가 고등학생이던 세기말과 뉴 밀레니엄의 시기에 고등부 담당 목사님이셨고, 그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대학 진학 이후에도 가끔 부산을 찾았고, 휴가 때 여행을 가거나 부산 국제 영화제를 가게 되면 꼭 한 번은 들러서 인사를 드렸었다. 나와 짝꿈의 결혼식에 오셔서 주례를 해주시고, 축복해 주셨던 목사님.


고등학생 시절 만난 목사님의 딸은 초등학생이었다. 그런 꼬꼬마가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 넘었고,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 신부는 내 얼굴이나 기억할까 싶어 부러 신부대기실에는 가지 않고, 목사님과 사모님께만 인사를 드렸다. 두 분 모두 반갑게 맞아 주셨다. 목사님께선 얼마 전 쓰신 책도 선물로 주셨다. 함께 오지 못한 친구에게는 목사님이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주기도 했다.


식이 끝나고 밥을 먹고 인사를 드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돌아왔다. 휴대폰 배터리가 8% 남아 있다. 다행히 2000원에 보조배터리 대여가 가능해 핸드폰을 충전하면서 역사에 있는 어느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노트북을 꺼내 글을 남긴다. 이제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갈 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올 시간이 멀지 않은 것이다.


결혼식이라는 이유로 거의 5년 만에 부산을 찾은 것 같다. 다만 바다 한 번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다소 아쉽다. 비가 안 왔으면 주변 산책이라도 좀 했을 텐데. 떨어지는 비를 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친구 (2) 곰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