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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휴먼 May 12. 2023

소극적 수용력, 나도 가질 수 있을까

소극적 수용력 :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실과 이성을 애써 추구하지 않고 불확실하거나 신기하거나 의아한 상태를 견딜 수 있는 능력


이번에도 인스피아 뉴스레터를 통해 마음에 크게 와닿는 내용을 만났다.

바로 영국 시인 존 키츠가 이야기한 '소극적 수용력'.

위에 기재한 것처럼 이는 문제를 마주하였을 때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 태도와 그걸 견딜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인간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 자신에게는 결말이 없지만, 이야기에는 결말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스토리텔링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결말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결말을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인간의 뇌도 문제를 이해하고 알아내려고 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알지 못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것을 보면 혼란을 느끼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정과 사회생활에서 우리는 늘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처하도록 강요받아왔다. 문제를 결론을 빠르게 내리고 빠르게 대응할수록 보통 좋은 점수 혹은 평판을 받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건 인간과 사회의 본성과는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것 같다. 정신력과 지난한 훈련을 통해야지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지가 아닐까. 근력 운동을 하고 지루한 유산소 운동을 견뎌내야 튼튼한 몸을 갖게 되는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 야채를 일정 분량 이상은 꾸준히 먹어야 건강해지는 것처럼.  


대부분의 상황과 문제 판단이 명확했던 지난날에 비해, 나이와 경험치는 늘어난 반면 현실은 불확실하거나 의아한 경우가 많은 요즘이었다. 어떤 문제나 판단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하면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감정을 누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지 그냥 감정만 따라도 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어딘가 불편하고 찜찜한 마음을 가진 체 일상을 살아가고 또다시 떠 올려 보고를 반복했다.


물론 이것이 소극적 수용력이라고 하긴 어렵다. 어떻게 보면 일시적 회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이런 스스로의 낯선 모습이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되고 위로받았다. 어쩌면 내 마음에도 그런 불확실함을 견딜 수 있는 근육이 조금 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정신승리에 가까운 것도 해볼 수 있었다. 좀 더 이 소극적 수용력을 알아보고 싶다. 이를 알고 전반적으로 자신의 삶과 관점이 달라졌다는 누군가의 말을 안식처 삼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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