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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휴먼 Aug 13. 2023

근본 없는 불안과 미리 하는 걱정은 사그라들 수 있을까

혼란과 감정소모가 유난히 큰 날들이었다. 가장 큰 요인은 지루하게도 직장, 그중에서도 직장 사람이었다. 어느덧 이직한 지 1년이 지났고 작년 이맘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 그 주제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내 머리와 마음속을 유영해 왔다. 이젠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은 주제라 좀 지쳐가는데, 동시에 그럼에도 아직 그 주제를 무시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안타까움에 퍽 서글퍼진다.


나의 코어를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가장 불안하고 불편했던 것은 나의 중심을 잃어버린   모든 혼란 속에 던져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신경 쓰이는 팀장의 편애와 노골적인 차별. 환심을 사기 위한 동료의 진심 없는 리액션과 과장. 팀장의 편애 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수다를 떨며 언제 하는지   없는  다른 동료와   조합의 패거리 짓까지. 팀장이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그 둘에게 쏟아내고 패거리 짓을 종용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거슬리고 짜증이 났다. 일을  때에도 그들의 말과 행동에 신경이 가 기분까지 좌우되기도 했다. 이런 감정과 영향이 낯설었다. 팀장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경하거나 궁금하지도 않은 팀장과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동료에게 대체 무엇을 바랐길래, 나는 이런 근본 없는 서운함과 짜증을 느끼는 걸까.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원래라는  실체가 없다는  알지만, 그런 감정이 낯설고 불편했다.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아있는 것처럼, 균형점이 살짝 틀어진 것처럼.


 회사에서 동기였던 언니가 문득 생각이 났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긴 했지만, 꽤나 라울 만큼 그를 싫어했다. 그의 사소한 행동과 습관까지도 혐오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특별한 이유 없이 그의 존재 자체를 싫어했다. 그에게 가졌던 나의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졌기 때문 임을 이제는 안다. 어쩌면 나는 회사 동료에게 생각보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혹은 이미 그러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현재 회사에서도 회사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대할  있는 동료를 만났을  크게 기뻐했고  사적으로도 어울리고자 했을 수도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동료들이 나를 존중하고 신경 쓰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나는 꽤나 실망하고 이에 반발심으로 심술을 부려왔던 것일 수도 이겠다. 새삼 내가 이렇게 오지랖이 넓고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었나 싶다.


이런 혼란이 그려낸 뿌연 안갯속에서 만들어진 나의 불안과 걱정은 사실 막연하고 실체가 없다. 팀장의 차별과 업무적으로 쏟아내는 공격적인 발언들, 야근, 영양가 없어 보이는 업무들. 사실 이 모든 것들에서 나는 얻으면 얻었지 잃을 게 없다. 그중에서 그나마 내 마음을 쿵. 하게 할 수 있는 건 사실 ‘영양가 없어 보이는 업무’인데, 사실 잘 알고 있다. 영양가 없어 보이는 업무는 빠르게 쳐내고, 그중에서도 영양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찾아 영양가 있게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을 나는 결국 버텨내고 있다. 근본 없는 불안과 미리 하는 걱정이 주는 지긋지긋함, 혼란, 분노와 신경쓰임을 1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이 견뎌 냈다는 사실을 돌아보자.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와 정치 쪽에는 타고난 재능도 세련된 요령도 없는 유형의 인간인걸 알기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아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신이 얼마나 흔들리면서도 단단한 사람인지, 하며 새삼 놀란다. 흔들리고 수없이 고민하고 아파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견디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결국  자신이라는 ,  새삼 깨닫고 증명해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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