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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휴먼 Oct 09. 2023

‘엄마’에게는 왜 이토록 복잡한 마음이 깃들어있을까

엄마 생각이 지겨웠던 때가 있었다. 내 앞가림 하나로 벅찬 학생 시절에 내게 가장 크고 깊은 골칫거리는 ‘엄마’였다. 큰 좌절을 주었던 재수나 매번 공포에 가깝게 다가왔던 학비, 꿈꾸기도 어려웠던 교환학생과 휴학, 시작조차 쉽지 않았던 인턴쉽과 취업 난 속에서도 ‘엄마’라는 주제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엄마는 혼란스럽고 불안정했으며 뒤틀려있었다. 안타깝게도 가장 큰 원인은 가난이었을 것이다. 나와 엄마는 함께 살아왔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난의 그늘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가난하다는 인식은 일상적이지 않아서, 그 그늘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되면 세상 모든 어둠을 흡수한 것처럼 나와 엄마의 마음은 차갑고 또 어두워졌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로 신혼을 시작했을 엄마는 나를 낳아서 좀 더 가난해졌을 것이다. 아이를 가지는 순간부터 돈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니까. 아빠와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한 후, 엄마는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인한 빛을 끌어안으며 더욱 가난해졌고 나를 양육하면서는 늘 가난했다. 빛을 져가며 집을 구했고 생활했고 나를 가르쳐 대학을 보냈다. 잠자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두 배 이상인 하루하루를 이겨내야 했고 주말에도 일을 쉬지 않았다. 해결하지 못한 자신을 향한 실망과 헤아릴 수 없는 자식의 상처와 속내, 그리고 달마다 목을 죄여오는 가난 속에서 그의 몸과 마음은 쉬지 못했다.

엄마의 그 혼란과 불안정은 그대로 내게 쏟아졌다. 종종 들여다본 방 안에서 바라본 엄마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고, 별거 아닌 일에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분노와 폭언을 받아내야 했다. 서로 온 마음을 다해 미워하고 원망했고 또 가여워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가난과 불안과 원망과 가여움의 고리는 내가 돈을 벌고 독립을 하면서 조금씩 바래졌다.


돈을 빌려달라는 엄마의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어느 날 야근 후 회식 중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 통화에서, 엄마는 대뜸 200만 원을 빌려줄 수 있냐고 내게 물었다. 그게 왜 필요한지, 어쩌다 그 정도의 돈도 없게 되었는지 설명을 들을 수 없는 건 차치하고, 아무 말 없는 내게 그래서 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달라는 말에 나는 그 바래진 고리가 아주 선명하게 내 손목과 발목 어디쯤에 걸려있는 걸 보았다.

그 정도의 돈은 비상금으로라도 갖고 있고 한 두 달 뒤에 받을 수 있다면 크게 무리하지 않고 빌려줄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과,

엄마의 가난과 나와 돈을 연결 짓는 엄마의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이 이번을 계기로 어디로 어떻게 퍼져나갈지 모른다는 복잡한 두려움이 짧은 시간 속에서 무수히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슬퍼졌다.


엄마에게 여유 돈을 빌려주는 일이 내게는 왜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

가난은 언제 나와 엄마에게서 그 그늘을 걷어가줄 수 있을까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는 너무 멋진 말로 나를 울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뭐가 문제인지 생각할 힘도 없이 지쳐버린 퇴근길, 잘하지도 않는 짓을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전화를 걸어 놓고는 별 다른 말 없는 내게 엄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 자신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어떤지, 요즘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지.

그러다 요즘 부모의 교육까지 뻗어나가면서 교육관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것은 너는 다 잘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보다도 세상이 네 뜻대로 다 될 수 없고 그렇다 해도 괜찮다는 사실이라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마주하고 이를 견뎌낼 수 있는 것. 그 방식이 체념이든, 오기든, 포기든,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또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끝도 없이 뻗어나가는 이야기에 조금씩 통화를 언제 끊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이 말을 듣고 나서는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체념과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나의 처지가 서글프다는 이전의 나의 말을 기억한 엄마의 위로였다.

그러니 나의 체념이 지금 당장은 자신을 갉아먹는 것 같아 보인다 해도,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찾아낸 방법일 것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눈물이 날 만큼 위로가 된 그 말도 좋았지만, 문득 퇴근길에 뜬금없이 전활 걸어 별말도 않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나의 엄마라는 것이 더 벅차올랐다. 아, 나는 참 미워할 수 없는, 불쌍해하며 슬퍼할 수만은 없는 엄마를 가졌구나. 말도 안 되게 나는 행운아구나. 난 참, 크고 복잡하며 멋진 걸 가졌구나.


누군들 엄마에게 하염없이 슬프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감정만이 있을까.

그저 나의 엄마라서 한없이 고맙고 미안하며,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것이라고

어쩌면 한 인간이 태어나 배우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은 그의 엄마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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