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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동자 Apr 04. 2022

3월 28일 ~ 4월 3일

13주

정육점

3월 28일. 월요일


어렸을 적 정육점은 좀 무서운 곳이었다.


붉은 조명이 켜진 진열장 안에 시뻘건 고기가 있고

주인아저씨가 냉동고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들고 나와

큰 기계가 쓰윽 쓰윽 쇳소리를 내며 고기를 썰고 있는 곳,

그런 곳이 정육점이었다,


어린 눈에  붉은 조명과 시뻘건 고기도 무서웠고

도축된 소나 돼지의 몸통, 칼 소리는 섬뜩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고기라도 좋아하면 곧 우리 집 식탁에 오를 맛있는 요리라도 상상할 텐데

엄마가 주로 사던 삼겹살은 냄새도 맡기 싫어하던 기피 음식이라

정육점은 어느 것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주부가 되어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고르고

가족들을 위한 고기 요리도 해야 한다.


물론 이제는 정육점이 무섭지 않은데

그건 내가 너무 어른이 되어 버린 이유도 있겠지만

요즘 정육점은 붉은 등도 고리에 걸린 고깃덩이도, 기계의 쇳소리도 없는

예쁜 가게들이 많다.

참, 다행이다.



변비

3월 29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변비약을 먹었다.


어제저녁부터 아랫배가 불룩하게 가스가 차고 소화도 안된다.

이건 변비의 예비 징후가 틀림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한창 변비가 심하다는 아가씨 시절이나 임산부였을 때도

변비라는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 나도 비껴갈 수 없는 건 나이다.

몇 년 전부터 소화가 잘 안 되더니 걸핏하면 화장실 가기도 힘들어졌다.


이제는 안 먹던 요구르트에 유산균, 그것도 모자라 차전자피까지

모두 챙겨 먹는데도 식단에 채소가 조금만 부족해도 바로 신호가 온다.


하루 종일 꼬이듯 아프고 꾸룩 거리는 장속 전쟁을 치르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이 들면 식욕부터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입맛

3월 30일. 수요일


봄이 오면 입맛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전에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봄이 되면 기분도 좋아지고 외출도 잦아지니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입맛이 당기곤 했다.


그런데 이번 봄은 다르다.

이맛이 없어 밥을 못 먹는 건 아니지만

무얼 먹어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픈 게 아닌데 늘 아쉽다.

먹고 싶은 게 걸 찾아 먹어도 기대한 그 맛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처음엔 봄이라 식욕이 폭발해서 식탐이 생겼나 했다.


그런데, 먹고 싶고, 좋아하는 걸 먹어도 시큰둥하니

이건 식탐이 아니라 그냥 입맛이 없는 것 같다.


입맛이 곧 삶의 의욕이라는 데

나 혹시 삶의 의욕도 떨어진 건가?

아니면 이것도 나이 탓?

어쩌면 이런 걱정을 하는 것 자체도 나이 때문일까?



알고리즘

3월 31일. 목요일


유튜브 무한반복의 늪에 빠졌다.


우연히 처음 보는 드라마 영상 클립을 눌렀는데

그다음부터 계속 추천 동영상, 관련 동영상에 드라마가 계속 뜬다.


원래 관심도 없고 보지도 않는 드라마인데 영상이 뜨니

자꾸 눌러서 보게 되고

다른 드라마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이다.


이런 게 바로 유튜브 알고리즘의 세계인가 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유튜브 끊겠다고 결심 재결심까지 했는데

여전히 유튜브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있다.



장떡

4월 1일. 금요일


보통 엄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이 하나쯤은 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같은 음식도 있지만

나에게 엄마의 맛은 장떡이다.


밀가루에 고추장을 풀어 부치는 빨간 부침개다.

양파와 청양고추 정도만 넣고 보통의 부침개보다 작게 부친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엄마는 간을 세게 해서

밥반찬으로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밀가루에 고추장으로 간을 하고 양파, 고추 넣어 만든 부침개를

밥반찬으로 먹었다는 게 이상하다.

마치 밥반찬으로 피자를 먹은 거나 비슷한 거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별거 아닌 재료로 만든, 오히려 다른 어떤 부침개보다 부실한

그 장떡이 맛있다는 거다.


온갖 부침개를 다 좋아하는 나에게도  장떡은 별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뽑는 첫 번째이자 거의 유일하게  엄마를 떠올리는 음식이다.


저녁에 불금에 치맥이나 할까 오븐에 치킨을 굽다가

느닷없이 장떡이 생각나 몇 개 부쳤다.

그렇게 치맥에 장떡을 같이 먹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아들은  나를 어떤 음식으로 기억할까?



만우절

4월 2일. 토요일


4월 1일은 만우절.

거짓말을 해도 웃어넘길 수 있는 날이다.


그런데 어제가 그 만우절이었단다.

그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특별히 거짓말 농담을 하고 싶은 사람도

나를 속일 사람도 없지만 무언가 아쉽다.


전에는 만우절을 기억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이런 마음의 여유조차 누리기 힘든 건가

아니면

그냥 건망증인 건가! 

 


늦잠

4월 3일. 일요일


"아까 분명히 일어났었는데..."


언젠가부터 침대를 빠져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다.


오늘도 처음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9시 30분이었다.

슬슬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해야지 하고 있는데

눈 한번 깜박하니 어느새 12시 10분 전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며 들으라는 듯이

"아! 아까 분명히 아침에 일어났는데..."

멋쩍은 소리를 한다.


분주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서둘러 아점을 준비한다.


요즘은 매일의 시작이 이렇다.

눈을 뜬 시간과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 시간의 간격이 점점 길어진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이제는 몇 시간씩 다시 잠이 든다.


나이 들면 잠도 줄고 새벽에 일어난다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잠도 늘어나나 싶다.


아니면, 봄맞이 이 춘곤증?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한 건가?


전에는 여름이 오면 기력이 딸려 홍삼을 찾았는데

이제는 봄부터 건강식품을 챙겨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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