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독후활동 17
고슴도치X
노인경 글,그림
거리마다 스피커에서 잔잔하게 울리는 도시 찬가와 집집마다 가스부드럽게비누를 배달하는 트럭소리가 들리는 ‘올’에 사는 고슴도치 엑스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 올 한 올 부드러운 실이 쌓여 실타래 모양을 이룬 이 도시는 뾰족한 것을 극도로 경계해요. 안전한 도시를 위해, 세련된 도시를 위해 이 도시에 사는 고슴도치들은 비누로 가시를 부드럽게 한 뒤 가지런히 정리하고, 모든 학생들은 등굣길 가시 검사를 받아 뾰족 가시를 없애는 작업을 하죠. 엑스는 가시 검사에 통과하지 못해서 도서관 청소를 하다가 꽁꽁 쌓인 책을 하나 발견해요. 책에서는 옛날 동물들을 위기에서 구한 고슴도치 이야기가 실려있었어요. 뾰족한 가시를 이용해 동물들을 구해 내었다는 이야기였어요. 그 동안 뾰족 가시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엑스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죠. 그리고 앞으로 뾰족해질 거라고 결심해요. 뾰족 가시를 한번에 날카롭게 세우는 연습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올에서 탈출하게 되었지요. 마침내 찾은 새로운 세상에서 엑스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시작을 맞이합니다.
오늘 소개한 책은 노인경 글, 그림의 <고슴도치 X>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잔잔한 그림에 한번 감동했고, 가슴 뛰는 전개에 또 한번 감동한 책이에요. 고슴도치가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과 비슷하지 않나요? 고슴도치들을 둘러싼 ‘올’이라는 도시는 캐시미어나 앙고라 소재의 스웨터가 연상되는 부드럽고 평온해 보이는 도시에요. 하지만 쉽게 망가지기도 하죠. 고슴도치들을 둘러싼 실 한 올 한 올은 마치 정해진 대로 살아가길 바라는 이 사회의 고정관념, 편견을 상징하는 듯 해요. ‘얌전히 있어라, 튀지 말아라, 삐뚤어지지 말아라’ 세상이 정해둔 규칙에 맞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고슴도치들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거든요. 학생 고슴도치들이 가시 검사를 받는 장면에서는 학창시절 두발규정도 생각났고요. 귀밑 3cm까진 아니어도 두발 규정이 분명 존재했고, 하얀 양말에 까만 구두를 신을 것, 치마 길이는 반드시 무릎 밑이어야 했던 라떼시절.. 그때가 잠깐 생각이 났네요.
‘얌전히 어른들 말 잘 들으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대학생만 되면 다 끝난다’ 그 지겨운 레파토리를 12년 내내 귀에 딱지 앉듯 들어오다 대학에 들어갔더니 이번엔 학점에, 스펙에, 학점에, 좀 더 지나선 결혼, 출산과 육아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 숙제를 도장 깨듯 살아오는 동안 후회는 없었지만 가끔 마음이 지칠 때 ‘그때,, 그 선택을 안 했으면 지금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해요.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았을 때 받을 눈총을 견딜 수 없어서 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곁들여서요. 그리고 ‘나는 사회가 내준 숙제에 길들여져서 숙제를 안 하거나 건너뛸 생각 같은 건 못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요.
이런 생각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저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고 있어요. 우리 때랑은 달라도 너무 다른 시대, 눈 깜짝할 새에 빠르게 변하고 있는 사회 환경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내고 길러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서 틈나는 대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남편도 저도 FM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라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공부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아이에게 좋은 인생은 아니라는 거 이제 우린 다 알고 있잖아요. 이런 문제의 결론은 언제나 뻔하게 나오긴 해요.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냐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일을 잘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거든요. 말 그대로 덕업일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실컷 즐기면서 이왕이면 그걸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무얼 좋아하는 지, 무얼 잘하는지 찾아야 하는데 아직 그 해답에 대해선 할말이 없네요. 저도 열심히 그 답을 찾는 중이어서요.
그런데 이 책에서 고슴도치는 고슴도치 다울 때 가장 행복하듯 나는 나 다울 때 가장 행복하겠다는 힌트를 얻었어요. 좋아하는 게 시시각각 달라지고 잘하는 것도 매년마다 달라지는 아이들을 한 걸음 멀어져서 지켜 봐줘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겠죠? 엄마로서 아이가 지게 될 숙제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지만 또 너무 내려 놓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들을 조금은 내려볼게요. 당장 수학문제집 한 장 더 풀고 챕터북 한 장 더 읽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 언젠가는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받아들일 날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