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비행하면서 대체로 평온했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었다. 몇 해 전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 편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사 서비스가 한창이었고 마무리가 코앞이었는데 갑자기 소름 돋는 정적이 기내를 덮쳤다. 비행기의 엔진 소음이나 기체 떨림 같은 일체의 소리들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린 것만 같았다. 낯선 정적과 함께 승무원도 빨리 착석하라는 다급한 기내 방송이 나오는가 싶더니 순간 비행기가 밑으로 뚝 떨어졌다. 우어어어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식기들과 서있던 승무원들까지 공중에 붕 떠올랐다. 무중력 상태에서 버둥대는 듯한 느낌이 몇 분간 지속된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불과 몇 초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비행기의 수직 낙하가 멈추자 승무원과 식기들이 내동댕이쳐졌다. 승무원들은 골절상 등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고 미처 좌석벨트를 매지 못한 승객 십 수 명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이송됐다. 난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트라우마처럼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아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공포가 엄습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하던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죽음의 공포와 함께 삶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활화산처럼 솟구쳐 올랐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슬픔을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찾아오는 터뷸런스를 CAT(clear air turbulance)이라고 한다. 고양이 애호가로서 세상 모든 고양이를 애정하지만 마른하늘의 터뷸런스 CAT은 절대 좋아할 수 없는 고양이다. 일반적인 터뷸런스는 구름의 모양이나 뇌우 등을 통해 기상 레이더로 관측 가능하다. 하지만 CAT은 내가 겪은 것처럼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첨단 기술로 제작된 현대 비행기는 터뷸런스에 휘말려도 빠르게 위치를 회복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나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좌석벨트 착용이다. 당시의 기억 때문에 나는 승객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할 때도 벨트 싸인과 무관하게 항상 좌석벨트를 착용한다.
당시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을 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의외로 많은 승객들이 식사를 마쳤다는 사실이다. 승객들이 제대로 식사를 못했을 것을 걱정했는데 식기를 수거하며 사실 좀 놀랬다. 대한항공 기내식이 이렇게나 맛있습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