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단어를 꼽아보라고 하면 난 '암스테르담'이다. 장거리 노선 중 유난히 암스테르담 비행이 많았는데 올해만 6번을 다녀왔다. 승무원들의 비행 스케줄을 관리하는 부서를 '편조'라고 부르는데 내 인사 카드에 이렇게 적혀있나 싶을 정도다.
어릴 때 감명 깊게 읽은 동화 : 주먹으로 둑을 막은 네덜란드 소년
존경하는 인물 : 거스 히딩크
좋아하는 꽃 : 튤립
특이사항 : 풍차에 환장함
편조에서는 매달 21일이 되면 다음 달 비행 스케줄을 공지한다. 우리 회사는 현재 40개국 111개 직항 노선을 운행 중인데, 6천여 명의 승무원들을 노선마다 기계적으로 배치해서 순환시키는 시스템은 아니다. 나름의 기준으로 가지고 운용하고 있을 테지만 회사의 구체적인 방침까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스케줄이 유독 좋은 승무원이 있다면 농담 삼아 "편조에 남자친구 있나 봐"라며 부러워할 뿐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노선이 다르겠지만 나는 일단 새벽 출발 비행이 가장 힘들다. 새벽 5시 반까지 공항 브리핑룸에 도착해야 되는 스케줄의 경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출근 채비를 시작하고, 대중교통도 없는 시간대라 남편을 깨워 자차로 이동해야 한다. 뉴욕 같은 초장거리 비행도 힘들다. 올해 뉴욕도 암스테르담만큼 다녀온 것 같다. 해외에 나가면 주로 호텔에만 짱 박혀 있는 스타일이라 호텔이 후져도 마음이 촤악 가라앉는다. 주말에 오프가 하나도 없는 스케줄을 받으면 회사에 섭섭한 마음마저 든다.
근데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코로나가 끝나고 정상 복귀한 것만으로 감사하던 마음이 엇그제였는데 이젠 스케줄 가지고 투덜거리고 있으니. 그럼에도 2023년 비행 스케줄이 힘들긴 했다. 조상님 사번대로 불리는 우리 팀장님 마저도 스케줄 나올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셨을 정도니까.
스케줄로 괴로워할 때마다 동기들은 점이라도 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안쓰러워한다. 점까지는 모르겠고, 새해를 맞이하며 요 정도는 기도해 보자. 하느님, 부처님, 신령님, 아기보살님~ 회사에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아요. 저 새벽잠 많고요, 남편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고요, 주말에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요, 무엇보다 풍차 전혀 안 좋아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