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그만큼

서로에겐 존중의 거리

by 케이론

우리 집 아이들은 유독 강아지, 고양이를 좋아한다. 길 가다가도 개를 산책시키는 모습을 보면 그 옆을 떠나지 못한다. 집 주변을 맴도는 들고양이를 보면 휴대폰부터 들이민다. 언제든 주려고 편의점에서 산 고양이 간식 츄르를 항상 들고 다닌다.

집에서도 키우고 싶어 했지만 절대 허락해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방과 후 수업에서 데려온 햄스터를 미숙하게 돌보다가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했던 아픈 기억 때문이었다. 키우기 전에 생명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당부했었다. 하지만 결국 좋지 않은 결말에 이후로는 절대 집에서 동물을 못 키우게 했다. 그 아쉬움은 늘 집 근처의 들고양이들에게 향했고, 나는 그 애틋한 마음을 적당히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시골집에 내려가다 생필품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물건을 고르는 동안 아이들은 주변의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유리문 너머로 벌떡 일어나는 둘째가 보였다. 아이는 옆 건물 골목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작디작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야옹야옹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그 골목 끝에 나올 듯 말 듯 서 있었다. 둘째가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니 돌아서 골목 뒤로 사라진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벤치에 앉자, 들고양이는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둘째가 다시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려 했지만, 고양이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두려움의 눈빛만큼이나 단단한 거리를 지켰다.

그렇다가 멀리 가 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손에 츄르를 쥐고 고양이를 부르는 둘째 주변에서 맴돌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최대한 따스한 눈길과 부드러운 손길을 내밀며 곁을 내주길 바랐지만 고양이는 아직 접근 금지 신호만 보냈다.

곁을 내어주지 않는 고양이 앞에서 둘째는 결국 다가가기를 멈추고 제 자리에 앉았다. 손에 쥔 츄르를 플라스틱 아이스크림 뚜껑에 담아 앞에 두었다. 아직도 고양이는 쳐다보기만 할 뿐 다가오지 않았다. 딸은 자신과는 더 멀리, 고양이와는 더 가까운 거리로 뚜껑을 밀어놓았다.

어느 순간, 고양이가 천천히 한 발을 옮기더니 조심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반가운 나머지 몸을 들썩이는 둘째의 몸짓에 순간 고양이도 멈칫했다. 다시 차분히 바라보기만 하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고양이는 앞에 있는 사람을 계속 쳐다보면서 츄르 맛을 한 번 보고 혀를 핥기 시작했다. 둘째도 이제는 조용히 앉아 고양이의 움직임만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마구 다가갔다면 그나마 이 정도 거리에서 고양이를 볼 수 있었을까? 낯선 마음을 열게 하는 데는 고양이든 사람이든 ‘보이지 않는 거리‘를 존중해 주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필요한 고유한 시간과 공간. 내 입장에서 재촉하면 그 문을 닫혀 버리고, 상대의 거리를 이해하며 기다린다면 언젠가 진심 어린 허락의 신호를 받지 않을까.

고양이가 스스로 다가오는 순간을 기다리듯, 사람과의 관계도 각자의 경계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존중의 거리를 지켜줄 때 비로소 진심 어린 만남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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