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ry hills의 아침은 조용하다. 경적 없이 도로 위를 다니는 몇몇의 차들,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사람들, 몇 걸음마다 나오는 카페에는 아침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단순한 블록이 반복되는 도로 위를 거닐다가 내 시선을 붙잡는 유리창 건너의 책을 읽는 사람들. 유리창 위, 반듯하게 쓰인 「Surry Hills Library & Community Centre」. 다음 주 월요일에 뉴사우스웨일스(NSW) 주립 도서관을 방문하려던 찰나에 만난 이 공립 도서관은 내 발길을 붙잡는다. (그렇다고 NSW 주립 도서관 방문 계획이 철회된 것은 아니지만)
이 작은 도서관의 중심에는 수많은 책들을 비롯해 CD와 DVD들이 질서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다. 남색과 연두색이 혼합된 앞치마를 두른 직원은 부지런히 반납책을 정리하고 있다. 도서관 한편에는 어린아이들의 간헐적인 웃음소리가 들린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날 때면 아이를 제지시키는 부모의 목소리도 조용하게 울리고.
어린이 구역의 정반대 편에는 Surry hills 길거리가 보이는 -바로 내 시선을 사로잡은- 통유리창 좌석이 있다.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을 들고 작업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그리고 휴식하는 사람까지. 10석도 안 되는 좌석에는 저마다의 일로 바쁜 사람들로 가득이다.
여러 자리들 중 가장 독특하게 생긴 의자에 앉았다. 일체형 테이블 겸 소파다. 회색의 푹신함에 기대어 도서관 신간 목록에 있던 책, Michelle zauner의 『Crying in H Mart』를 펼쳤다. 한국에서도 읽고 싶어서 언젠가 읽을 목록으로 저장했는데,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서는 전문을 읽을 수가 없어서 의도치 않게 아껴 둔 책이 되어버린.
‘영어면 어때, 한글로 읽어도 대충 읽는 습성이 있는데’ 라며 호기롭게 읽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를 넘기니 작가의 유년시절 흑백사진 한 장이 있다. 비슷한 생김새의 두 어린아이를 보니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든다. 또 한 페이지를 넘겼다.
‘FOR 엄마’
전체가 영어인 책에서 발견한 두 글자의 한글. 듣기만 해도 슬픈 단어 리스트가 있다면 그 리스트 안에는 분명 엄마라는 단어가 있을 테다.
한인마트인 H마트. H는 ‘한아름’에서 따온 첫 자이다. 한국인의 정이 담긴 단어이기도 하다. 작가의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는 바로 ‘음식’이었다.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양한 한국 음식들, 이를테면 ppeongtwigi, kimchi, samgyupsal, miyeokguk과 같은 메뉴들이 영어로 표현된 것이 신기하면서도 반갑다.
그중에는 Jolly Pong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죠리퐁은 나 역시 어릴 때 동생과 참 많이 즐겨 먹었던 간편하면서도 맛있는 과자였다. 죠리퐁을 우유에 한가득 넣어 시리얼처럼 먹기도 하고, 죠리퐁 내에 있던 하얀 간이 스푼으로 푹푹 떠먹기도 하고. 이 책에서는 엄마가 작가에게 죠리퐁 숟가락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짧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 짧은 단락이 왜 슬픈지 모르겠다. 책의 첫 시작 문장 때문인지 그냥 슬프다는 감정이 기본으로 깔려버린 걸지도 모른다.
Ever since my mom died, I cried in H mart
단 세 페이지만에 눈물이 맺혀 버리다니. 지독하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어느 정도 이성적인 사람으로 바뀐 줄 알았더니 퇴사하자마자 그 기질은 모두 증발한 듯하다.
시드니에서는 이 책이다. 여행자이지만 책 한 권쯤 빌릴 여유는 있잖아요! 시드니에서 내게 남은 시간은 4일. 남은 기간 동안 이민자의 나라인 호주에서 미국 이민자의 삶을 몇 페이지라도 간접 경험하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