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첫날은 많이 걸은 탓에 숙소에 오니 녹초가 되어 일기를 쓰지 못했다. 간밤에는 폭풍우 같은 비가 몰아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니 Museum 역에는 괴성을 지르는 미친 청춘들이 가득했다. 리뷰에서 말한 ‘방음 심각’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구나. 건물 밖의 소음이 벽간 소음을 뚫어버린다.
작은 창문을 통해 행인들의 오늘 옷차림을 확인한다. 10명 중 8명은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있다. 간밤에 쌀쌀하더니 어제와는 정반대의 공기인가? 혹시 몰라 쪼리 대신 운동화를 신었고 회색 후드 집업도 걸쳤다. 역시 대세를 따르니 실패가 없다. 어제처럼 반팔을 입고 다녔다간 감기에 걸렸을지도 몰라.
이번 여행 준비에서 최고의 애로사항은 역시 ‘옷’이었다. 호주에서 약 7일을 머물다가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여정인데 호주의 날씨는 일교차가 심하다고 하니 짧은 옷들만 챙기기엔 무섭다. 물론 호주에서 옷을 구매해도 되지만 퇴직금이 떨어질 때까지 여행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에게 해외에서의 의류구매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더군다나 물가도 비싼 호주에서. 그래서 얇은 겉옷 두 장을 챙겼는데 도착한 날은 짐 덩어리처럼 느껴져서 후회했는데… 아, 오늘을 위해 필요했군’이라는 작은 위안이 된다.
카페 TEECHA
카페 TEECHA
어제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커피를 많이 마시지 못했다. 오늘은 최소 3잔은 마실 테다. 여행지에서 1일 5 커피 하는 사람으로서 분하다. 오늘 아침에는 Surry Hills 지역을 둘러볼 계획이다. 그 길의 시작점에 있는 카페 「Theeca」에 왔다. 부는 바람에 초록 잎이 흔들리는 커다란 나무. 그 옆의 작은 계단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작은 장소.
크루아상
그리고 카푸치노
커피를 내리는 공간과 테라스 자리에 펼쳐진 테이블들. 주문을 하고 햇살과 바람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2인석에 앉았다. 손으로 뜯어먹는 크루아상 한 조각, 그리고 카푸치노 한 모금. 환상이다. 퇴사를 앞둔 몇 달간은 “난 꼭 아침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을 살 거야. 늙어서가 아닌 젊을 때”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는데 지금 그 꿈을 이루었다.
이 꿈의 유효기간은 아마도 잠깐이겠지만. 그 잠시의 기간 동안 넉넉한 커피와 햇살들로 나를 채워야지.
그나저나 갑자기 등장한 저 시커멓고도 길쭉한 부리를 가진 새가 무섭다. 정확한 이름은 내가 모르니 내 멋대로 ‘큰 부리새’라고 명명한다. 조금 전엔 비둘기 한 마리가 내 주변에 떨어진 크루아상 빵가루를 먹더니 큰 부리새는 접시 위의 크루아상을 노린다. 길쭉한 다리와 길쭉한 부리를 무기 삼아서 자꾸만 내돈내산 크루아상을 탐낸다.
마음 같아서 한 입 주고 싶지만 그 한 입이 남은 빵 전부일 것만 같아서 쉽사리 내어주지 못한다. 점점 더 대범해지는 이 녀석은 부리를 테이블 위에 걸치고 그릇을 끌려고 한다. 내 앞자리에 앉은 두 명의 남자는 저 녀석을 쫓아내려고 손을 휘휘 휘두른다. 시드니에서 만난 유사도둑이다. 이렇게 대놓고 도둑질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