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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May 14. 2023

죽고 싶어, 내가 더

나보다도 죽고 싶다던 당신에게

지겨워요. 


내가 더 힘들어. 너보다도 죽고 싶어, 하고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너무 한결같아서 지겨워요. 외롭다고 말하는 나에게 당신은 사는 건 원래 외로운 일이라고 했죠. 당신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저 사는 게 조금 더 외로워졌을 뿐.


밤낮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오늘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어요. 아침이 아니라 새벽에, 그것도 이제 해가 막 저물어버린 새벽에 눈을 떴어요. 한참 동안 무엇도 하지 않은 채 해가 뜨길 기다렸어요. 햇빛이 내 동공을 비집고 들어와서, 나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선물해 주길 바랐어요. 그러면서도 햇볕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블라인드를 내렸어요.


친구에게 우울증에 대해 말했어요. 새로운 병원을 예약했다고도 이야기했어요. 엊그제에는 원고 일정을 미루어 줄 수 없다던 담당자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작가님께 우울증에 대해 말했어요. 이건 나의 가장 약한 살점이자 최고의 무기예요. 그래서인가, 당신에게도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어쩌면 나는 영원히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요즘은 글을 쓰는 게 두려워요. 힘들거나 지친 게 아니라 두려워요. 당신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표정을 지어 보일까요. 그래도 써야지, 하고 말할까요. 아니면 관두지 못할 걸 알면서도 관두라고 쉬운 문장을 내뱉을까요.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좋게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요. 당신이 나에게 좋은 어른이 아니었듯, 나도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좀 문장을 만들어낼 용기가 생겨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넘쳐서 그런가 봐요. 당신은 내 말에 답조차 제대로 주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에게 응답을 받고 싶어요.  그래서겠죠. 뭘 써야 하나 오랜 시간 고민한 두 번째 글을 당신에게 전하는 편지로 대신하기로 마음먹은 건. 당신이 이 글을 읽지 못할 거라는 건 알지만 나는 답장을 기다릴 거예요. 그 기다림이 내 남은 인생의 시간과 같은 값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

지겨워요.


지겨워해서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도 지겨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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