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래에 비해 조금 일찍 가정을 이룬 40대 초반 아줌마다
큰아들은 중3, 둘째딸은 중1인 학부모 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울때 혼자서 다짐했던것중 하나가 있다.
절대 내 부모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을것이다. 우리 부모가 했던것의 반대로만 하자.
그렇게 하면 아이가 도망치고 싶을때 나를 의지하겠지, 부모라는 그늘을 바라보고 의지 할수 있게 그런 부모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배운대로 한다고 했던가 나도 어느새 작은 잘못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윽박지르던 날이 많았다. 어느날, 남편이 내게 말했다. 너는 너무 과하게 화를 낸다고..한가지 잘못을 하면 그렇게 까지 화낼일이 아닌데도 화를 낸다고..무엇이 그렇게 너를 화나게 하냐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아도 될일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의 불안이 강박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그대로 두면 아물기는 커녕 덧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키우지 않기로 했지만 아물지 않은 내 상처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생채기 내고 있었다.
밤이 되면 잠이든 아이들을 보며 울고 후회하며 안그럴거라 하지만 아침이 되면 빨리 출근해야 되는 마음에 아이들을 채근하며 화를내고 욕을 하는 나는 영락없는 내가 싫어했던 내게 가장 아픔이 됐던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그런 나를 방임하던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나는 어떻게 해야 참을수 있는 인간이 되는걸까 나는 어떻게 해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될까 나는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소리지르지 않는 인간이 되는걸까
고민을 하다 마음속으로 아이를 때리고 혼내보기로 했다. 마음으로 세번 했는데도 누그러지지 않으면 그때는 화를 내자 라고 다짐한 순간 부터 아이들에게 화가 날때마다 마음속으로 아이들을 혼내면서 때리는 상상을 했다. 첫날에는 두번까지는 매정하게 때렸다. 세번째에는 소리만지르는 나를 상상했다.
상상으로 때린것조차도 마음이 아팠다. 왜 나는 상상에서 조차 아이를 때리는가 ..죄책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그리고 돌아본 현실에서의 나의 아이에겐 더이상 손찌검이나 욕이나 소리를 지르는 일은 조금 덜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달, 두달 일년 이년을 보내며 아이에게 화내는 횟수를 줄이다 보니 이게 되는거였구나. 내아이를 위해 내가 노력하면 나는 화를 안낼수 있는거구나..부모는 할수 있구나. 상상으로 때린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거였다. 부모는 아이에게 그렇게 할수 있었다.
그럴수록 나의 부모가 이해되지 않았다. 할수 있었던거였다. 이런 작은 아이에게 그렇게 까지 무차별적으로 때리지 않았어도 될일이었다.
세상의 분노를 가득담아 아이에게 화풀이 하지 않아도 됐던 일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부모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커졌다.
때리기도 아까운 아이를, 소리지르기도 아까운 아이를 왜 그렇게 키웠을까, 사랑만 해줘도 아이는 내말을 잘 듣고 따라와주고 협조해주는데...왜 그렇게까지 소리를 질렀을까.
나는 어릴때 자주 아팠고 많이 아팠다. 늘 머리가 아팠고 배가 아파서 엄마한테 아프다고 얘기하면 엄마는 자면 괜찮을거란 소릴 자주 했다. 그렇게 잠을 자고 나면 밥맛이 없고 밥을 잘 먹지 않아 또다시 아프고..
태어났을때도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한 나는 유당불내증으로 분유도 못먹고 바로 이유식으로 제대로 된 재료로 만들어지지도 않는 이유식으로 건너 건강하게 자라지 못했다.
물론 그당시의 나의 부모의 삶은고달팠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나에게 아직도 미안해 하신다. 하지만 그렇게 못먹이고 제대로 치료를 못해준것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다만 하루라도 나를 안아주고,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해, 라는 말 한마디면 내가 아주 조금은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커진 부모에 대한 원망을 나는 효도로 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