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이 너의 먹잇감이 되지않길 (5)

부모라는 이름으로

by do Tory

사남매중 그나마 나는 부모님과 차로 왕복 4시간에 사는, 다른이보다 조금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챙겨보는게 익숙하고, 또 자처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점점의지 하셨고, 또 나를 경계하셨다.

어릴때 해준것이 없는 자식이 당신에게 잘하는 모습이 고맙기도 또는 경계가 되기도 했나보다.

하지만 나는 돌려받을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해드릴때마다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서운한일이 많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지나가곤 했다.

그들은 여전히 부족하며, 부모에 대한 정립이 제대로 되지않았노라고 되새기곤 했다.

특히 어머니는 미안해 하셨다. 어릴때 우리를 제대로 못돌보아 준것에 대해, 그리고 특히 나를 챙기지 못한것에 대해,,, 사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릴때 결혼하셨고 경제개념이 제대로 박히신분들이 아니셨다.

아니나 다를까 또 다시 돈사고를 치셨고 그것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나는 나가 떨어졌다.

더이상 부모를 내 자식처럼 컨트롤 할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차라리 거리를 두었다면 덜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하고 있었다. 부모님도 실제로 자신이 들인공보다 잘 큰 자식이고 더 베푸는자식이라며 평도 하셨다.


하지만 돌이켜지지 않는 부모님의 경제개념은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연을 끊다 잇다 끊다 잇다를 반복해오다 경제적인 문제로 이제 다시는 뵙지 않으리 다짐하며 마지막 연락을 그렇게 끊어버렸다.

장례식장에서나 뵙겠지 그렇게 서로 살면되지 싶었다.


앞에 언급했듯 그렇게 연끊고 산지 몇년후 아버지의 뇌경색 소식을 듣고 다시금 모였을땐 생명을 앞다툰 순간에는 어떤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속깊은 대화를 통해 알수 있었다. 나만 힘들었던게 나만 상처받은게 아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힘드셨고 고생하셨을것이라 생각하니 미워했던 마음이 저절로 없어졌다.


부모가 된다고 갑자기 어른이 되는건 아니다. 나도 부모가 된건 겨우 26살인데 우리 부모는 22살이었다. 나보다 4살이나 어린...그 어렸던 두 성인이 아무런 기반없이 부부가 되어 산다는건 생각보다 힘든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가 받은 상처는 다 모르신다. 나도 마찬가지다. 다 아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들 치열하게 살았던 것은 맞았고, 조금더 나은 선택을 할수 있었던 선구안이 없었을것이고 그런걸 알려줄 어른이 주변에 없었을 것이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봤다. 주인공에게 인생은 이렇게 사는것이라고, 아주 가장 기본적인것만 알려줘도 그아이의 삶은 숨을 쉴수 있을만한 삶이었다. 나도 그렇게 내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고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보면 그런 조언을 해줄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은 덩그러니 사회에 나와 그저 살아지는 데로 살다보니 멀리 보는것에 익숙치 않으셨고 그렇게 선택한 결과들이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세상은 내 부모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현재 방사선 치료를 모두 받으셨고 꾸준한 식단관리와 건강관리를 유지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옆에서 음식과 또 평생의 친구처럼 아버지를 서포트 하고 계신다.

이번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리셋이 된것같다. 미워했던 마음도 해묵은 감정도 서로에게 쌓였던 응어리도 그저 눈녹듯 사라져 버렸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당장 하루를 살아내는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걸 깨달은 계기가 되었다.


사실이렇게 되기까지의 고비도 몇번 있었다. 치료도중 술을 마셨다던가 나에게 미운소리를 했다던가

하지만 그게 다 무슨소용이냐 다음날 되면 후회할것을,,, 그저 미안하다는 말한마디 하면 될것을,,


가장 크고 어렵고 깊은 숙제를 푼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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