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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22. 2020

감사 리스트를 쓴 지 한 달

혼자 알기 아까운 습관

 어쩌면 너무 흔한 말이라 사람들 마음에 그리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 단어가 '감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에 반복해서 지겹도록 등장하는 단어이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이기에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말이다. 그리고 지난달, 감사라는 단어에 더 빠져들게 된 에피소드가 생겼다.

오랜만에 친구와 같이 예배를 드렸던 날, 설교자가 본인은 매일 감사한 내용을 5개 찾아 기록한다고 언급하셨다. 어떤 상황이든 그 안에서 감사할 일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내용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내 옆에 있던 친구가 나에게 속삭인다.

"우리 저 감사 리스트 같이 적어보지 않을래?"

난 망설이지 않고 그러자고 대답했다. 뭔가 그전에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하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리스트를 적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그 날이 3월 8일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한 달 내내 우린 감사 리스트를 하루도 빠짐없이 나눴다. 우리가 리스트를 시작한 그 한 달 동안 예상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코로나 19가 점점 더 심각해져서 호주는 외출 자제령이 떨어졌고, 많은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를 가지 않게 되고, 부모님들은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나처럼 아이가 두 명인 그 친구도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늘자 버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우린 어김없이 하루의 마지막, 잠들기 전 감사 리스트는 써야 했다.


우연히 찾은 풀들 사이에 파란 꽃


쓰기 전에는 오늘은 5개를 못 채우겠는데, 생각이 드는 날이 더 많았다. 신기한 건, 그렇게 생각이 들 때마다 결국에는 5개가 채워졌다는 거다. 우리가 리스트를 적자고 얘기했을 때부터 그 감사 내용이 어마어마한 게 아니라 아주 지극히 사소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에 부담 없이 남보기엔 대단치 않더라고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지친 하루 중에 마시는 커피 한 잔, 가족 모두를 웃게 만드는 7개월 아기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첫째 아들이 소리치며 보라고 해서 본 예쁜 저녁노을, 쓰레기통을 내놓으려 나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등등이다. 이렇게 나만의 리스트를 적다 보면 "어, 오늘 그래도 그리 나쁘지 않았네" 생각하며 잠들 수 있었다.



감사 리스트에 적었던 아들과 함께 바라 본 노을 진 저녁 하늘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흔한데, 한 달이라는 우리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얼마 정도를 같이 할까 고민하던 중, 친구가 언급하길 어떤 습관을 만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한 달 정도라고 하니까 둘이 같이 한 달을 목표로 잡고 시작한 거였다. 한 달이 지난 지금, 그 친구도 나도 이제는 각자 감사 리스트를 계속 써 가고 있다. 우리는 그 리스트를 통해 매일의 사소한 기쁨을 찾아내는 시야가 생겼다.


감사 리스트를 적기 시작한 타이밍 또한 기가 막혔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쉽지 않은 시기였고, 불평이 하늘을 찌를 수 있는 시간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기 전에 이 연습을 시작했는데, 이 리스트로 인해 하루를 바라보는 내 시각이 변하는 날들이 많았다. 리스트를 적다 보면 쉽사리 놓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붙잡게 된다. 보물찾기 하듯, 밤마다 그 날의 기억을 되짚는다. 그러면 내가 이리저리 바빠서 놓친 순간들, 그 날의 소한 위로들이 보인다. 마음 따뜻해지는 격려의 말들이 내 귓가를 다시금 맴돈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모습들, 별거 아니라고 흘려버릴 수 있었던 시간들이 내 리스트를 채워나갔다. 리스트를 적지 않았으면 꺼내보지 못했을 일들이 늘어만 갔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걷다가 찍은 돌들 사이를 헤집고 핀 꽃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내가 읽고 있던 책에서도 감사 일기를 쓰는 내용이 나왔다. 오프라 윈프리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도 감사 일기를 쓴다는 거다. 그녀 또한 아주 사소한 일들로 그 일기 내용이 채워진다고 했다. 그녀는 10년 동안 감사 일기를 매일 쓰다가 몇 년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쓰지 않고 지내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일상에서 단순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된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감사의 힘은 단연,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불러온다는 거다. 조그마한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눈이 생기면, 더 가슴 깊이 감사할 일들이 찾아온다. 감사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 스스로가 변해서 어쩌면 그 전에는 감사하지 못했을 일 조차도 감사하게 되는 걸까. 감사 리스트를 쓴 지 한 달, 내 안의 미묘한 변화를 알게 되어 이 글을 쓴다. 나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워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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