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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15. 2020

코로나 19가 알려 준 사실

너도 시간이 더 필요했구나

 첫째 아들은 작년 9월부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데이케어(한국에서는 유치원과 같은 개념이다)를 가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난 작년 9월부터 내가 혼자 아이 둘을 보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몸조리도 해야 했고, 어린 둘째를 집에서 돌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첫째 아들은 보통 오전 9시에 데이케어에 가서 오후 5시 혹은 더 늦을 때면 5시 30분 정도에 집에 돌아오곤 했다. 생각해보면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줄어들었지만 그건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나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코로나 19를 호주도 피할 순 없었다. 3월 셋째 주부터, 첫째 아들도 온종일 집에 있게 되었다. 너무 막막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 며칠은 정말 두통이 끊이지 않았다. 둘째 이유식을 준비하고 중간중간에 모유수유를 해야 했고 낮잠도 재워야 했다. 첫째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고, 역할놀이를 하루 종일 해주길 원했고, 내 말도 너무 듣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 째에 들어섰다. 온몸이 쑤시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목소리는 더 커지고, 조그마한 일에도 화가 났다. 둘째는 밤잠을 온전히 자지 않으니 새벽마다 깨서 다시 재워야 했어서 낮시간에는 나도 졸리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사람이 코너에 몰리면 더 이상한 객기가 생기지 않는가. 어느 날 문득, 갑자기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달부터 동네 놀이터도 갈 수 없게 되었다


미술놀이를 좋아하는 첫째 아들을 위해 나가서 미술놀이 책 두 권을 사 왔고, 집에서 답답해하는 아들을 위해 둘째를 안고, 첫째는 손을 잡고 집 앞 골목을 걸었다. 나름 산책의 시간이었다. 집에만 있으면 우리 셋 다 미칠 것만 같아서 말이다. 신기하게도, 이유 없이 울어대던 둘째가 밖에 나가자 이 나무 저 나무를 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울음을 그치고, 첫째는 민들레를 찾아 불어대며 신나 했다. (아들은 그걸 '민들레 헌트'라고 불렀다) 15분의 산책 아닌 산책만으로도 내 안의 불이 소멸하는 기분이었다면 내가 너무 오버스럽다고 생각하려나. 하지만 그랬다. 그 날 잠깐의 숨쉬기로,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난 그전에 보지 못했던 걸 보았다. 첫째 아들이 더 많이 웃었고, 날 위해 더 이쁜 수저를 식탁에 놓아주었고, 엄마가 좋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첫째 아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지 못했다고. 데이케어에서 잘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해서, 내 몸이 피곤하니까, 둘째 아기를 돌봐야 하니까, 첫째 아들은 그렇게 많은 핑계들 속에 가려져 있었다. 어차피 여러 이유로 코로나 19가 아니어도 데이케어 가는 날을 줄일 예정이었는데, 이 시간이 좋은 연습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일주일 내내 같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 둘을 같이 보는 게 어려울까, 라는 일말의 자신감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말이다. 난 항상 혼자 아들 둘을 함께 보는 게 어려웠고,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놀 수 있었던 그리운 날 중에 하루


어쩌면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첫째에게, 그가 정말 필요했던 게, 다른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란 걸 알게 되어서 감사했다. 이 감사한 마음이 오래갔으면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이지만 첫째를 향한 이 마음이 더 오랜 시간 동안 내 가슴에 머물길. 그래서 자기의 에너지를 나와 나누겠다는 첫째 아들의 그 마음 씀씀이처럼, 내게 남아있는 모든 걸 그 아이에게 쏟아주길. 신기한 건 쏟아주다 보면 또다시 채워지는 이상한 흐름이 있다는 걸, 역할놀이 세 시간 한 오늘 깨달았다. 이 글을 쓸 만큼의 에너지를 결국 우리 첫째 아들한테 받았다는 걸 말이다.


풀들 사이에 꽃을 발견하며 너무 기뻐했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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