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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14. 2020

소포로 전달될 수 있는 게 기적이야

브런치 작가 도전 비하인드 스토리

 한국에서 온 소포를 받았다. 박스를 열어보니 사촌 동생이 보내준 11권의 한국 책이 들어있었다. 호주에서 살 수 없는 한국 책들을 보니 어찌나 감격스러웠는지. 둘째를 낳고 심신이 지쳐있다고 동생한테 투덜거린 결과가 꽤 쏠쏠하다. 그 11권의 책을 한 권 한 권 어루만지니 내가 부자가 된 거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동생은 내가 기대하지도 않은 선물을 많이 주곤 했다. 두 아들을 재워놓고 밤늦게 무슨 데이트를 나가는 여자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어떤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조차 그저 좋았다. 여러 책 중에 여행책을 먼저 골랐다. 우리 가족도 작년에 세계여행을 마치고 시드니로 돌아왔기에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까지 남아서인지 그 책에 먼저 손이 갔다. 책을 읽기 전에 표지와 지은이 소개를 읽어보니, 그 책은 브런치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출판된 책이었다.

어, 브런치, 나도 이거 아는데…


사실 몇 년 전 우연히 브런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이라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자신이 없었기에 시도 조차 못했다. 유럽, 미국, 아시아, 호주 여행을 하고 나서 골드 코스트에서 6개월을 살았다. 그 시기에 처음으로 첫째 아들이 데이케어(한국으로 치면 유치원으로 볼 수 있다)를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나한테도 자유시간이란 게 생긴 거다. 그 시간 동안에 지난 세계 여행을 뒤돌아 보며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글들을 브런치에 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닫힌 서랍 속에 오래된 노트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저장되어 있었다.



동생이 보내준 그 여행책을 읽어나가며, 더 진하게 내 마음이 동요되었다. 그냥 여행이 아닌 아들을 데리고 하는 가족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게 우연일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브런치 앱을 깔고 예전에 적어두었던 글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글에 맞는 여행 사진들을 찾아보면서, 그 시간들이 내 것이 맞았나 싶을 정도로 너무 귀하게 여겨졌다. 그때도 난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이 마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돌아보니 '흔치 않는 경험'이라는 말로 적기에도 부족할 만큼 특별하고 소중했다. 그 사진들, 내 마음속에 이야기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문득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겼다. 그래, 까짓것 한번 해보지 뭐, 작가 신청에 떨어지면 어때, 남들이 뭐라고 비판하는 댓글을 달면 어때, 이 '어때' 리스트는 늘어만 갔다.



 실패보다 두려운 건 후회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여행이 나에게 준 커다란 선물 중에 하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거다. 나중에 후회하기보다 지금 해보는 거다. 우연히 그때쯤 누군가 이런 글을 쓴 걸 읽었다.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길 원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아쉽게도 누가 쓴 글인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둘째를 낳고는 기억력이 심각하게 나빠졌다. 어찌 됐건, 그 글을 읽은 것 또한 우연이 아니라 운명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갑자기 나를 위해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동생도, 소포도, 책도, 그 글도, 자꾸만 나를 잡아끌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 운명을 거슬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길을 따라가면 뭐가 나올까, 한없이 궁금해졌다.


아들 둘이 잠든 그 고요한 늦은 밤에 내 가슴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소소한 기적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건 한국에서 온 소포에도 있을 수 있는 거다. 그건 책 한 권에, 한 문장에 담겨 있을 수도 있는 거다. 그 힘이 육아에 지친 엄마가 잠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글을 다시 쓰게 만들고 있다. 매일 반복된 하루 속에서, 설레는 시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오랜만에 느낀다.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나에겐 기적이다. 이 기적이 육아에 지친 다른 엄마들에게도 전달이 되길. 그대만의 소소한 기적이 기대하지 않을 때, 어느 날 문득 문 앞에 나타나길.


사진들은 제가 세계 여행 중 핸드폰으로 찍은 것으로,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사진들을 제 느낌대로 첨부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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