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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l 16. 2020

숲 속 마을의 어여쁜 아이

미국 달라스

 리아를 만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이 친구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신의 이름을 설명해 주었다. 임리아라는 이름은 숲 속 마을에 어여쁜 아이가 태어났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렇게 예쁜 의미를 가진 특별한 이름을 가진 친구를 부럽듯이 바라보았다. 한나라는 이름은 너무 흔하고 어디 가나 있는 이름이어서 내 존재 자체도 그냥 흔하디 흔한 사람 중에 한 명이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리아라는 이름은 흔치 않은 이름이라 좋았다. 까만 단발머리의 총명한 눈빛과 오뚝한 콧날을 가진 예쁘장한 리아는 글씨조차도 예쁘게 써서 칠판에 글을 써야 하면 으레 리아가 나가 글씨를 쓰곤 했다.

리아는 선생님을 포함해 모든 반 친구들이 좋아하는 아이 었다. 밝고, 구김살 없고, 잘 웃었고 무엇보다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 었다. 우린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고, 초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기억은 6학년 때 인건 리아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난 극도로 내성적인 내 성격을 바꾸고자 노력을 했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 속을 터 놓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고통스럽다는 마음을 느껴본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이 어둠으로 가득 차 버린 것 같은 기분, 울어도 울어도 계속 울 수 있다는 걸 배운 건 그때였다. 밥을 씹는 게 목에 모래를 삼키는 것 같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아빠는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디 예고 없이 내 곁을 떠났다. 내가 본 마지막 아빠의 모습은 눈 감은 싸늘한 모습이었다. 병원을 떠나 장지로 가는 버스에서 아빠가 일어나는 상상을 했다. 그만큼 나에게 일어난 현실을 믿을 수 없고, 믿기도 힘들었다. 어제는 아빠가 있는데 오늘은 아빠가 없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아빠였다. 내가 어렸을 때 공주병 비슷한 게 걸린 것도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는 항상 내가 제일 예쁘다고 말해줘서 난 순수하게 정말 그 말을 믿어버렸다. 나를 지탱하고 있던 중심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는 걸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일이 나에게 왜 일어난 건지는 더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가정 조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3학년 때,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손을 들면 되는 거였다. 여러 질문들을 하셨고, 그중의 한 질문이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아빠가 없는 학생을 물어보는 거다.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나는 떨리는 손을 들었다. 우리 반에서 손을 든 건, 나 혼자였다. 난 그 순간 얼음이 되었다. 그 순간 모든 게 어두워졌다. 그때 받은 충격이었는지, 난 그 이후의 학교 생활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잊으려고 애써서 정말 잊어버린 것 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때만 해도 편부모 가정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도, 교회에도 아빠가 돌아가신 애는 나밖에 없었다. 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고개를 숙였고 불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것보다 더한 건, 내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실의 아픔을 묵묵히 하루하루 견뎌내야 했다는 거다.

 

아이들과 달라스 동물원에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몇 년 동안 주눅 들어 살다가, 그와 반대로 밝은 아이가 되기로 결정했다. 인정받고 사랑받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나 조차도 아마 날 사랑하지 않았기에 남들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리아를 만났고 리아는 너무 반짝거렸다.

같은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같이 옆에 앉는 짝꿍이었고, 하교하고 나서도 리아네 집에 가서 시간을 자주 보냈다. 중학교 때 모든 추억에는 리아가 있었고, 나에 대해서는 우리 가족보다도 리아가 더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리아는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 걸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되어서야 그 이야기를 했고 그 이후로는 우린 정말 비밀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아빠를 놓아줬나 보다. 아빠를 놓아주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항상 밝은 아이라고 생각했던 리아는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아픔을 가진 아이 었다. 물론 여기서 모든 걸 말할 순 없지만 말이다. 아마 그래서 리아와 나는 똘똘 뭉쳐진 것 같다. 세상은 어린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산이었고, 우리는 이 큰 산 뒤에 볼 수 있다고 상상한 또 다른 세상에 대해서 같이 꿈꾸었다. 우리는 순수하게 우리의 꿈들을 믿었고, 우리가 이렇게 견디다 보면 더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서로를 토닥였다. 리아는 많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맑은 마음을 간직한 아이 었다.


서로의 아이들이 만나니 감회가 참 새로웠다


시간이 흘러 흘러, 우린 결혼을 했고, 리아는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미국 달라스에 살고 있었다. 내가 호주에서 결혼식을 했을 때, 리아가 들러리를 서 주었는데 그때 이후로 우린 만나지 못했다. 세계 여행을 하게 되면서 7년 만에 리아를 만나게 된 거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사는 것도 만만치 않는데, 리아는 독박 육아로 아이 세 명을 키우고 있었다. 타지 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겪고,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리아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내 눈에 리아는 여전히 어여쁜 아이 었다. 아직도 미련스럽게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어려움도 웃어넘기면서 말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세상은 여러 장애물을 리아 앞에 던져 놓았지만, 리아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하나하나 이겨내 갔다. 충분히 쓰라렸을 텐데도 리아는 여전히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리아를 난 존경 한다.

리아와 만나니 자연스레 우리 어린 시절에 대해서 얘기했다. 지금 엄마로서, 아내로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 어린 시절보다는 훨씬 낫다며 웃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초등학교 때와는 다른지만, 우리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달라스의 아파트에서 우린 잠자기도 아까워 새벽까지 밀린 수다를 떨었다.

최근에 리아는 세 아이들을 키우며, 대학원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난 그 누구보다 리아가 잘 해낼 거라 믿는다. 숲 속의 어여쁜 아이는 여전히 예쁜 꿈을 꾸고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리아의 숲길에 많은 사람들이 쉼을 얻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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