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별을 본 건, 한국에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이다. 아들은 두 시간에 걸친 징징거림 끝에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그제야 고개를 돌려 비행기 창 밖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 구름 위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별을 보았다. 하나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별들이 보였다. 구름 위의 별들이 신비로워 보여서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래서는 구름 때문에 별을 못 보겠구나. 어디에 있던지 별은 있는데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별을 볼 수도 혹은 보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예전부터 자주 들어왔던 관점의 차이다.
여행하면서 발전하고 싶은 부분은 ‘자족하는 능력’이다.어떤 상황에 있던지, 그 상황에 만족하는 마음을 품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남다른 ‘관점’ 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그 별을 보면서 했다. 구름 때문에, 너 때문에, 가족 때문에, 돈 때문에 등등 ‘때문에’는 정말 많을 것이고 그 또한 충분히 이해될 만한 힘든 이유들 일 것이다. 다만, 그 구름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별을 놓치는 거다. 구름 너머에 있을 별을 기대하며, 상상하며 사는 인생이 구름을 손가락질하는 인생보다 더 빛나지 않을까. 지친 나에게 다가왔던 그 별을 품는다.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사람을 만나며, 육아에 지쳤던 아줌마가 다시금 소망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동안 하루하루의 고된 여정이 쌓여 내 안에 잔잔히 다가왔다. 정답은 아직도 모르고 이뤄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소망이지만, 다시 꿈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얻었다.
그렇다고 인생이 늘 무지갯빛이 넘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답답한 벽에 부딪칠 때마다 구름 위의 별을 기억한다. 때로는 깜깜한 밤하늘에서 내가 보이는 건 구름뿐이지만 그 위에는 분명히 별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는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내게 말한다.
방콕에 있을 때, 약한 손톱이 의자에 잘못 걸려서 조금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손톱의 3분의 2 정도가 잘려나갔다. 그전부터 이유는 모르겠지만 손톱이 약해졌다. 심하게 부서진 손톱을 쳐다보니 참 보기 흉하다. 남은 부분이 얼마 되지 않아 보기 싫어서 며칠은 억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괜스레 다른 사람이 쳐다볼까 봐 손을 숨기기도 하면서 말이다. 별거 아닌 게 참 쑥스럽고 창피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방콕에서 만난 친구가 물었다. 그 잘려나간 손톱이 아프지 않냐고…
그 순간, 나도 놀랐다. 그렇게 많이 잘려 나갔으면 아픈 게 정상일 텐데 신기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흉측한 몰골을 한 내 손톱이 신경 쓰였지, 한 번도 아프지 않은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너무나 못생겨져 버린 손톱이지만 그래도 고통스럽지 않은 게 다행이고 기뻤다. 여행 중에 어디가 아프면 많이 신경 쓰이는데, 미관상 안 좋을 뿐 다른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삶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난다. 힘든 일들 중에서도 우리가 때론 그 순간 깨닫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도 다행이고 감사한 부분은 많다는 걸 느낀다. 남편이 방콕에서 감기 때문에 비실비실거렸다. 아들 챙기랴, 남편 챙기랴, 나 또한 감기 때문에 몸이 아파서 점점 더 지쳐갔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이리 길게 세계 여행을 하면서 큰 사고 없이 잔병치레 정도 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데 억지로 감사할 거리를 찾아내라는 말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관점이 생긴다면 그 부분에 마음을 열어둘 수 있는 태도가 때론 필요하지 않나 싶은 거다.내 못난 손톱이 그래도 아프지 않아서 너무 감사했던 것처럼, 나중에 힘든 상황에 처해진다고 해도 분명 감사할 마음의 공간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구름 너머에 있는 별을 기억하는 덕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