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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l 15. 2020

알 수 없는 걸 받아들이는 것

미국 뉴욕

 내가 다니던 대학교 도서관 위층에는 미디어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종종 프렌즈를 보며 영어공부를 하곤 했다. 프렌즈의 배경도 뉴욕이고, 재밌게 봤던 영화 ‘세렌디 피디’의 배경도 뉴욕이다. 이 뿐 아니라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이 바로 뉴욕 시티이다. 그래서인지, 뉴욕 곳곳을 걸어 다니는 데 꼭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타임 스퀘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정신없었고, 센트럴 파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조용한 사라토가에 있다가 여길 오니, 이 도시가 더 바빠 보인다. 사람들은 정말 빠르게 걷고, 서로 쳐다보지 않으며, 많은 관광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시드니에서 알고 지내온 친구가 있는데, 사진작가인 친구는 뉴욕에 촬영차 오게 되면서 더 시간을 내서 우리 가족과 휴가를 보낼 계획이었다. 우리가 뉴욕에 있는 시기와 맞아떨어져서, 같이 뉴욕시티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 친구네 아들은 우리 아들보다 한 살 많아서, 시드니에 있었을 때 종종 가족 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다. 친구와 같이 만나 뉴욕 여기저기를 걷는데, 사진작가인 친구가 보는 뉴욕은 내가 보는 뉴욕과 참 달랐다. 그녀는 뉴욕에서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사소한 것들도 자신에게는 영감이 된다면서, 얼마나 자기가 뉴욕을 좋아하는지 말해줬다. 그리고 뉴욕에서 만난 다른 사진작가들은 새로운 걸 추구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안전하게 찍기보다는 모험을 즐긴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끝없는 도전을 준다며 큰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맨해튼을 걸어 다니며 늘 영화에서만 봤던 거리를 내가 직접 걸으니 너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이렇게 큰 도시에는 살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걸 보고, 경험하면서도 다른 인상을 가져갈 수 있는 게 여행의 묘미이지 않나.



친구들 가족과 센트럴 파크에 가고, 록 펠레 센터 올라가서 엠파이어 스테이트를 보고, 정말 맛있는 멕시코 음식점에서 우리 앞에서 바로 아보카도를 으깨서 만들어 주는 과카몰리를 먹었다. 오래된 친구들과 새로운 도시를 같이 경험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니 시드니가 생각났다. 뉴욕에 있을 때, 시드니를 떠난 지 6개월 정도 되었는데 기분은 몇 년 전에 떠난 기분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시드니에서 살았던 우리 삶이 아주 멀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이렇게 활발한 아들과 여행을 하는 우리가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우리 여행을 늘 응원한다고 말해주었다.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그 과정에서 느낀 건, 때로는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도, 시드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언제 돌아올 거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모르겠다고 답을 하면 그 답을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느낌이다. 내가 느끼기엔, 사람들은 답을 모르는 것에 불편해한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점점 더 확실하게 불확실한 것에 익숙해진다. 이제 답을 몰라도 괜찮다. 여행의 끝에 우리가 어느 나라에 있을지 몰라도 괜찮다. 그것 때문에 불안할 필요는 더 이상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도 괜찮다. 내가 언제 이 땅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데, 이 여행의 끝을 모르는 것쯤은 괜찮다.



‘Embrace the unknown’ 이란 말은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다. 알 수 없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한두 번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또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걸 그 자체로 받아들이니 오히려 자유롭다. 여행할 때, 종종 며칠 뒤면 갈 곳이 없는데 머물 숙소를 예약하지 못한 적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난리를 쳤을 텐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불안한 마음보다 우리가 좋은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 확신이 현실이 되곤 했다. 어디 갈지 몰라서, 언제 끝날지 몰라 불안했더라면, 난 그 아름다웠던 풍경을 제대로 볼 마음의 여유는 결코 없었을 거다.

뉴욕 거리를 거닐며, 이 모르겠는 도시를 보고 또 본다. 좋다 싫다는 답을 정할 필요 없이 그냥 이 도시를 받아들인다. 뉴욕 한복판에서 알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다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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