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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n 24. 2020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체코 프라하

 장기여행에 유럽도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예전에 남편과 둘이서만 갔을 때 방문했던 곳보다는 가지 못했던 곳을 가자고 했다. 하지만, 여행 경로를 정하면서 프라하를 들렸다가 베를린에 가는 게 나아서 프라하는 예외로 다시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디지털노마드가 살기 좋은 리스트를 모아놓은 웹사이트(nomadlist.com)에서도 유럽 중에 프라하는 꽤 높은 순위였다.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물가와, 안정적인 인터넷, 그리고 볼거리도 많아서 그런 듯하다. 프라하가 그리 큰 도시도 아니고 저번에 갔을 때 많은 곳을 봤다고 생각해서 그리 큰 기대를 하고 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철저히 나의 착오였다. 다시 간 프라하는 충분히 예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 많았다. 우리가 예약한 에어 비앤비가 존 레논 벽 바로 옆이었다. 저번에는 존레논 벽을 아예 보지 못했고, 숙소 근처 또한 지난번에 갔을 때는 하나도 보지 못한 곳이었다. 걷다 보니, 저번에 보지 못했던 게 많았단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숙소를 오고 가는 길에 늘 볼 수 있었던 존 레논 벽에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여러 낙서들이 있다. 그림도 있고, 단어, 짧은 글들도 볼 수 있었는 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바로 이거였다.

“Find happiness in the pursuit"
(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으라)

존 레논 벽에서. 여행길에서 만난 문구들을 통해 삶을 배운다. 여행 후에도 가슴에 남아 내 생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말들.


이 짧은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인 줄 몰라도, 그 사람은 정말 중요한 걸 깨달았구나 싶다. 어딘가에 끝에 도착해야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진정한 행복은 그 추구하는 과정에 심겨 있음을 이번 여행을 통해 더 느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걷고 있는 이 길 끝에 가서야 발견하는 행복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사실 우릴 정말 기쁘게 만드는 건 이 길을 걸으면서 기대치 않았을 때 우연히 발견되는 소소한 행복인 것이다. 저 문장은 간단한 것 같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다. 세상의 많은 명언들이 그런 것처럼, 머리로는 너무 잘 이해되는 데 실천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볼 수 있는 풍경
다시 와도 또 좋은 프라하
프라하성에 올라가서


프라하를 여행하는 동안, 아들은 소리를 정말 많이 질렀다. 말을 하지 못해서 답답해서 그런다고 들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소리 지르는 아들을 데리고 공공장소를 다니는 게, 남편도 나도 어려웠다. 징징거리는 아들을 달래고 혼내고 하는 게, 이렇게 글로 쓰면 별 일 아닌 거 같은 데 현실에서는 많이 지치는 일이다. 폭발할 것 같았던 나는 아들과 남편과 같이 간 이름 모를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았다. 언젠가 호주 심리학자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하면서,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의 오감에 집중하는 거라고 했다. 예를 들면, 시각에만 집중해서 자연을 바라보는 거다. 그리고 나선 눈을 감고 한 동안 소리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후각에 집중하는 거다.  왜 갑자기 그 공원에서 그의 말이 생각난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가 한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해보기로 했다. 잃을 건 없지 않은가.
처음엔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눈으로 하늘만 바라봤다. 움직이는 구름이 보였다. 생각보다 구름은 그 날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도 그 구름처럼 흘러갈 거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다음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듣는 게 왠지 모르게 기분 좋았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저 듣고만 있어도 내 머리를 식혀준다고 해야 하나. 이제는 냄새를 맡는다. 프라하의 냄새를 집중해서 맡아본 기억이 없다. 바람의 냄새, 풀냄새, 지나가는 사람들의 향수 냄새. 왜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씩 기분이 나아진다.

지금에 집중하고 사는 게 쉽지 않다. 사실, 집중이라기보다 현재에만 누릴 수 있는 걸 누리는 것 말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는 참고 이겨내는 시간이라고만 느꼈지, 현재를 어떻게 제대로 살아내는 건지 알지 못했다. 20대에는 과거에 얽매여서 거기서 헤어 나오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과거의 받은 상처들과 아물어지고 있는 마음의 아픔들을 둘러봐야 했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불안한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가장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지금’ 은 내버려져야 했다.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던 그 날의 프라하


그래서 존 레논 벽에서 본 그 말이 더 와 닿았다.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으라. 이루었을 때 말고, 도착하기 전에 그 길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한테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추구하는 그것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거란 걸 말이다. 프라하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반대이다. 서두르지 말고 그 길을 걷는 동안에서도 충분히 네가 찾고 있는 것 이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수 있다고 내 귀에 속삭인다.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돌고 돌아, 프라하의 이름 모를 공원에 앉은 지친 아줌마에게 전한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고 말이다.


여전히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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