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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n 15. 2020

 '우연'이 '인연'이 되어 함께 걷다

크로아티아 자다르

 사실 난 SNS에 대해서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눈을 마주치며 서로 마주 앉아 얘기하는 걸 추구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물론, 근본적인 내 생각이 변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세계 여행을 하면서 하이라이트 중에 하나인 좋은 친구를 얻은 건 다른 게 아니라 SNS를 통해서였다.

디지털 노마드 삶을 살면서 다른 한국 엄마는 본 적이 없어서, 우연히 해쉬태그로 알게 된 다른 한국 엄마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락하게 되었다. 어쩌다 알게 된 ‘우연’ 이 여행하면서 정말 큰 힘이 되어준 ‘인연’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가 디지털 노마드 엄마로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이 여정을 가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감정과 경험들을 언니는 나보다 1년 앞서 시작했기에 내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거 같다. 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늘 따뜻한 말로 날 보듬어 주었다.


언니네 가족과 함께 비치에 갔던 날


장기 여행에 지치고 육아가 너무 힘들 때, 먼저 이 삶을 시작한 언니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참 든든했다. 언니는 이미 겪었던 일이기에 내가 일일이 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이해해줬다. 내가 느낀 진정한 위로는 조언도 좋지만 너 잘하고 있다는 한마디 말을 해주는 거다. 그런 면에서, 언니는 늘 잘하고 있다고, 그 정도면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말해주셨다. 단순히 불평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넌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이해받는 거 같아서 힘을 얻고는 했다.

그러다가 우리 두 가족이 언젠가 어디선가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두 엄마가 작은 꿈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우리 두 가족이 만나서 함께 여행하는 꿈 말이다. 서로의 여행 스케줄을 보면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사정이 생긴 언니네 가족이 계획을 변경해서 크로아티아로 오게 되었다. 우리는 크로아티아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경로였고, 언니네 가족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경로였다. 두 가족이 만나게 된 곳은 바로 자다르였다.


자다르의 노을


자다르에 있는 언니네 숙소에서 우리 가족은 처음 만났다. 어색할 틈도 없이 서로 환히 웃으며 마치 몇 년 전부터 알아왔던 사이처럼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니가 문득 질문을 했다.


“한나 씨, 세계 여행한 거 책으로 써보면 어때요?”


난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부정했다. 책 쓰는 건 너무 부담스럽고 그럴 능력도 없다고 대답했다. 정말 그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게 시작된 데에는 언니의 공이 정말 크다. 내 글이 좋다고 했고, 같이 글을 써보자고 추천한 것도 언니였다. 언니가 아니었음 엄두도 못할 도전이었을 텐데, 여행을 통해 이런 인연을 만나게 된 게 아직까지도 신기하다.


'태양의 인사' 의 낮과 밤


바다 오르간은 파도가 만들어내는 잔잔한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자다르에서 가 볼만한 곳 중에 하나이다. 또, 자다르 하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곳은 바로 '태양의 인사'이다. 일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광장 바닥에 설치된 조명인 태양의 인사는 일몰이 내려올 때쯤, 바닥에 여러 다양한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늘과 바다는 일몰이 만들어낸 그림 같은 색으로 물들고, 광장 바닥은 또 다른 여러 색깔들이 그 아름다운 여름밤을 물들어 줬다.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감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자다르를 뽑았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같이 걸었던 그 여름날 밤


그 아름다운 일몰을 지희 언니네 가족과 같이 볼 수 있게 되다니. 마음으로 꿈을 꾸고, 서로의 꿈을 나누다가 이제는 정말 같이 얼굴을 바라보며 이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살다 보면 모든 꿈이 이뤄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꿈을 꾸고, 언젠가 그 날을 기다리며 사는 삶을 선택하기로 한다.

두 엄마는 메시지라도 주고받으며 종종 연락했지만, 두 아빠는 처음 만나는 거라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을 왜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아빠는 보자마자 어색함 없이 대화를 이어나간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공통점만으로 대화 거리는 충분했다. 두 아들도 태양의 인사를 보러 가는 거리를 신나게 뛰어간다. 두 엄마는 이 길을 함께 걸으며 꿈 꾸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단순한 대화가, 작은 바람이 자다르의 여름밤이 되어 우리 곁에 자연스레 다가왔기에 말이다.


언니네 가족과 함께 데이 트립을 간 프리트비체호수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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