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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ug 18. 2020

조금 더 머물지 않았다면

호주 케언즈

 호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던 나도 알았던 곳이 있다. 그건 바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호초가 있는 곳으로 수많은 스쿠버 다이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라는 책을 읽고 막연하게 산토리니에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다녀온 것처럼, 크레이트 베리어 리프도 그냥 막연하게 가고 싶은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한 달 동안 지낸 퍼스를 떠나며 자연스레 케언즈를 선택한 것도,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를 가기 위한 거였다. 케언즈는 언제나 찾아가도 물이 따뜻했던 에스플라나드 라군이 좋았다. 낮은 물론이거니와 밤에 가도 따뜻해서 우리 셋은 줄 곧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는 낮이든 밤이든 우리 셋은 이 라군에 뛰어들어 물속에서 한참을 지내곤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에스플라나드 라군


그리고 드디어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를 가는 데이 투어를 했다. 배를 타고 1시간 반 정도로 지나니 도착했다. 다이빙보다는 우리가 둘 다 즐길 수 있는 스노클링을 했다. 아이는 너무 어려서 스노클링을 하지 못해 배에 연결되어 있던 작은 수영장에서 놀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번갈아 보며 스노클링을 했다. 신혼여행을 가서 처음 스노클링을 시도했을 때, 수영을 하지 못해서 아마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겐 구명조끼와 오리발이 있었다. 그런 장비가 있으니 물속에서 마치 수영에 능숙한 사람이 된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노클링에 적응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액티비티가 되었다. 수영을 엄청나게 잘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좋았고, 물속에서의 고요함이 좋았다. 세상의 소란에서 벗어나 혼자일 수 있어서 좋았다. 귀에서 종종 들리는 물이 만들어 낸 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상이 좋았다. 온전히 나와 자연만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주어서 말이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 가는 중에 잠깐 들렸던 섬


크레이트 베리어 리프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안타까웠고, 아이러니 하지만 모든 게 없어지기 전에 나도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되고 싶었다.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 배에서도 충분히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에 스노클링 했을 때는 물속이 생각보다 너무 깊기도 하고, 오랜만에 스노클링을 해서 그런지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물고기들은 꽤 봤지만 왜 그렇게까지 여기가 유명한 걸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스노클링을 하면 할수록, 헤엄치고 또 헤엄칠수록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신기한 모양의 산호초들이 보였고,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이 보였다. 겁먹어서 조금 더 머물지 않았다면, 나중에 사람들에게 좋긴 했지만 그냥 그렇다고 말할 뻔했다.


보트로 도착해서 스노클링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모든 것들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제대로 된 크레이트 베리어 리프를 볼 수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겠지. 사실 엄마가 되는 것도, 한국을 떠나 호주에 사는 것도, 세계 여행을 하는 것도 다 두려움이 있었다. 두려움을 넘어서야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다. 여행도 일상도 그렇다. 피하고 싶고 그냥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걸 거슬려서 헤엄쳐야 할 순간을 마주한다. 내가 모르는 크레이트 베리어 리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조금 더 헤엄쳐 나가야 한다.


수중 카메라없이 핸드폰으로만 사진 찍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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