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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Sep 03. 2020

2년 동안 우리 집은 전 세계였단다

여행이 끝난 후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넌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 난 그렇게 곱게 잠든 너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네가 나중에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 금문교를 만든 사람도 사람들의 많은 반대로 그 다리를 짓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우리가 이렇게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너도 꿈꾸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은 선택을 하지 않길 말이야. 그 실패보다 더 중요한 건 그걸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과 더 커지는 너의 마음이란 걸 기억했으면 해. 아빠, 엄마가 어쩌면 쉽지 않은 그리고 많은 이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처럼 너도 네가 가야만 하는 길을 찾고 누가 뭐라 해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어. 우리가 세계 여행을 한 걸 기억하지 못할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남겨. 네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마음도 컸어.


네가 낮잠을 잤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엄마는 여행을 하면서, 누구보다 너에게 가장 많은 걸 배웠단다. 네가 얼마나 모험심이 강한 아이란 걸 너도 알았으면 좋겠어. 스페인의 라스 파마스 섬에 있었을 때, 우리는 사막에 갔어. 어린 너는 그때 사막이란 걸 처음 가 본 거였어. 생각보다 모래 바람이 거칠었고, 그 날 넌 컨디션도 좋지 않아 차에서도 많이 울었던 날이라, 엄마와 아빠는 많이 지쳐있었어. 사막 위 끝까지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갈 수 있는 만큼 가보자 하는 생각에 걷기 시작했어. 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씩씩하게 바람을 이겨내고 걸어갔어. 그 조그마한 몸으로.


네가 그렇게 걸어가던 모습을 엄마는 대견스럽게 바라봤어. 네가 커서 때로는 사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너를 가로막는 바람을 상대로 걸어가야 할 때가 올 텐데, 그런 날이 오면 너는 이미 모래 바람을 이겨내고 걸었던 아이란 걸 알려주고 싶어. 넌 이미 해봤으니까 또다시 할 수 있다고 말이야. 네가 그렇게 걷지 않았다면 그 끝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다를 볼 수 없었을 거야. 그 바다를 보는 순간,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건 다 잊히더라. 뻔한 이야기인 거 같아 네가 잔소리로 들을 수도 있겠지만, 엄마가 살아온 바로는 뻔한 게 사실일 때가 많아. 네가 원하는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꿋꿋이 걸어 올라가야 할 거야.


너의 첫 사막, 스페인 Maspalomas


넌 호기심이 많고 네가 바로 할 수 있는 쉬운 것보다는 몇 번이고 실패하면서도 기어코 조금 더 어려운 걸 선택하는 아이였으니까 앞으로도 네가 마주해야 할 장애물들이 많겠지만, 너는 이미 어떤 장애물이든지 이겨내고야 마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네가 어른이 돼서도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해. 엄마는 너에게 강인한 도전 정신과 한 순간을 소중히 즐기는 마음의 여유를 배웠어. 호기심 많던 그 아이가 어떻게 커나갈지 엄마는 너무 궁금해.  


몬테네그로에서도 여전했던 너의 모험심


너는 겉으로 보기엔 천방지축 개구쟁이이지만 엄마만 알고 있는 너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단다. 엄마가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했던 밤, 넌 엄마 귓속에 ‘엄마, 프린세스’라는 말을 속삭였어. 그 한마디에 엄마는 이 세상 누구보다 귀한 사람이 된 거 같았어. 널 키우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고 사랑도 충분히 주지 못해 자책할 때도 넌 누구보다 따뜻한 포옹을 해줬어.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마다 넌 망설이지 않고 바로 ‘괜찮아요’라고 말해줬어. 네가 그렇게 말해주면 정말 괜찮은 거 같아 마음이 놓였어. 너무 지쳐 그냥 잠들려는 밤, 넌 ‘엄마, 기도’라고 크게 말했어. 네가 그 날 감사했던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해달라고 했어. 그래서 엄마도 덕분에 놓치고 있었던 그 날의 감사한 순간들을 기억했단다.


체코 프라하에서


네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언제나 애정으로 가득해. 그런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엄마도 조금 더 이 세상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 넌 왜 이리 궁금한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은 지 엄마와 걸어가다가 넌 자주 손을 당겨 멈추라고 하곤 했지. 그럼 우린 발걸음을 멈춰 천천히 줄 지어 걸어가는 개미들을 보았고, 이름 모를 꽃들을 한참을 바라봤고, 자갈들을 물에 던지기도 했어. 넌 이 모든 것들을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듯 보았지. 세상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빛이 엄마가 놓쳤던 마음이란 걸 알게 해 줘서 고마워. 이 세상이 우리에게 펼쳐 준 여러 기록들을 너의 눈을 통해 제대로 볼 수 있어서 너와 함께한 여행은 특별했어.


여행 다니면서 넌 형들과 누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 네가 올라가지 못하는 계단을 같이 손잡아 줬고, 넘어지면 달려와 안아주기도 했어. 그렇게 받았던 도움을 네가 크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누어졌으면 좋겠어. 그때쯤이면 받는 것도 좋지만, 나눌 때 경험할 수 있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너도 알겠지. 빨래를 하는 엄마를 도와줄 때 너의 눈빛이 어찌나 반짝이던지. 네가 누군가를 도와줬다는 그 사실에 넌 너무 기뻐했어. 도움을 주는 기쁨이 너의 마음을 얼마나 채우는지 이미 너는 알았어. 앞으로도 너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자.


크로아티아 코르출라섬


엄마로서 과연 내가 너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나 의심할 때, 넌 나에게 이미 그 사랑을 맘껏 주었어. 그래서 엄마는 너에게 사랑을 배웠어. 목적지를 찾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가는 길에서 누리는 게 여행이란 걸 너에게 배웠어. 사람이 얼마나 흥미로운 존재인지 항상 궁금해하는 너를 보면서, 사람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법을 배웠어. 난 너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려 했는데 결국에는 내가 더 많이 배웠어.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다른 게 아니라 네가 너여서 고마워. 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뒤에서 믿고 바라볼게.


그림 같았던 호주 화이트 헤븐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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