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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의 이별

by 최정식

익숙함과의 이별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를 감싸는 공기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익숙함이란 단순한 습관이나 환경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때로는 우리의 존재를 정의하는 요소가 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익숙함과의 첫 이별은 어린 시절의 이사였다. 나는 익숙한 동네의 골목길과 친구들, 집 앞 나무의 그늘을 떠나야 했다. 새로운 곳에서의 설렘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익숙했던 모든 것과 작별해야 한다는 공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떠나온 공간과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나의 추억과 정체성이 얽혀 있는 곳이었다. 익숙함을 떠나면서 비로소 나는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았다.


익숙함은 우리의 삶에서 일종의 지침이 된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며, 익숙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반복되는 일과를 통해 우리는 삶의 안정감을 느낀다. 이러한 익숙함은 우리의 내면에 작은 쉼터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를 안주하게 만든다. 익숙함 속에 머무르며 우리는 성장의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익숙함과의 이별은 아프지만 필요하다. 그것은 성장을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익숙함과의 이별은 또한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새롭게 정의할 기회를 준다. 익숙한 환경이 사라질 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오랜 직장을 떠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직장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쌓아온 정체성의 일부를 떠나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더 깊은 자기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익숙함과의 이별은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초대장과도 같다. 그러나 익숙함을 떠나는 것이 늘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익숙함과의 이별은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낯선 환경은 처음엔 두렵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간다.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공간에서 추억을 쌓으며 우리는 점차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바꾼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익숙함과의 이별 속에서 우리가 얻는 가장 큰 통찰은, 익숙함 자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익숙함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붙들어 두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익숙함과의 이별은 우리에게 유연함을 가르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준다. 우리는 익숙함을 떠나면서 비로소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삶은 익숙함과의 반복적인 이별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프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익숙함과의 이별이 우리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익숙함과 작별을 준비한다. 그것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임을 알기에, 나는 낯섦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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