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걸 모를까? 그만큼 봄을 기다린다는 거겠지. 봄을 왜 이렇게 좋아하고 기다릴까? 딱 먼저 떠오르는 말은 꽃 피는 봄날이다. 사계절 중에 봄은 생명의 상징일지도. 움츠려 떨던 어둠의 긴 겨울을 벗어나며 다시 생동감을 맛보며 살아나는 부활의 기쁨일까. 3년 째로 접어드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의 봄은 예전에 가졌던 봄의 감각은 어렵겠지. 봄 나들이 꽃구경도 그림의 떡일 듯.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어제를 살면서 오늘을 예상 못했듯이 또 내일을 예측할 수 없으니, 그저 주어진 오늘을 수용할 뿐이다.
난 때론 삶이 힘들 때면 내 고향 전라도 사투리인 '빠끔살이' 라는 소꿉놀이를 기억한다. 벽돌 가운데를 돌멩이로 쪼아 파내어 절구통 만들고, 그 오목한 벽돌 구멍에 풀잎을 넣어 찧기도 하여 벽돌가루를 고춧가루라 하고 온갖 반찬을 만든다. 올망졸망한 돌멩이들도 주어다가 집을 짓기도 하고, 온갖 풀잎 뜯어다가 나물이라고 만들어 밥상도 차리며 놀던 어린 시절 추억이 남아 있다. 지금 아이들하고는 전혀 다른 문화의 놀이와 도구들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의 것들로 즐기고 놀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행복한 기억이다.
어쩌면 삶도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처해진 상황이 풍족해야만 만족스러운 건 아닐 것이라고. 물론 상황이 만족스러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린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거다. 내가 어려서 놀던 빠끔살이의 크기와 개수에 상관없이 그 순간을 즐기는 자체로 만족스러웠듯이. 지금 이 순간의 삶도 그러고 살고 싶다. 이런 글을 쓸 때는 지금의 내가 힘들다는 걸까?
내 나이 또래의 지인은 코로나로 중환자실에서 한 달째 반 수면 상태로 오크모 치료를 받고 있다. 건강이 안 좋은 지인에겐 행여나 만남이 오히려 화가 미칠까 봐 접촉을 피한다. 주변 사람들과의 모임도 사라졌다. 아들은 퇴근하면 곧바로 샤워하고 외출복은 베란다에 걸어 놓는다. 나 역시 두통, 인후통, 기침 증상이라도 있으면 민감해진다. 만약 확진이 되면 나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코 앞에 봄은 다가오는데 코로나 상황은 날로 기세 등등이다.
어젠 집에 쉬면서 갑자기 내 방을 정리했다. 남편과 시누이는 지금 준비해 놓은 시어머니 영정 사진이 잘 안 나왔다고 다른 사진으로 교체하자는 거다. 며느리인 내 눈에는 이상이 없지만 자식들은 조금이라도 곱고 고운 어머니 모습을 간직하고 싶나 보다. 하여, 나는 '예써' 하고 졸지에 벽장 안을 다 뒤져 액자와 사진들을 찾다가 내친김에 온갖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정리한 거다.
그러면서 내게도 버릴 것들이 이 집에 한 짐인걸 안다. 문젠, 물건들보다 내 자신이 더 문제인 줄 어찌 모르겠는가? 나 자신에게 코로나라는 상황은 새 발의 피일지도 모른다. 왕고집에, 편파적이고 편협함에, 자신의 허물은 볼 줄 모르고 남만 탓하는 등 등.
코로나와 나를 의식해보며 코로나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측면 또한 우린 다 알 수 없을 것도 같다. 권위적이고 굳이 불필요한 사회적 의례와 통념들은 무너지고 있고, 새들은 목청을 높여 노래할 것이고, 꽃과 나무들은 기름 바른 듯 윤기 내며 필 것이다. 지금은 따뜻한 오후, 밖에서는 그간 겨울에 들리지 않던 새들의 노래가 봄을 알리는지 경쾌하다. 나 역시 놓을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르는 아집들을 저 코로나처럼 몰아내고, 저 새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봄님과 더불어 밀애를 즐겨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