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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나들이

차가운 밤바다에서 건진 불씨

by 수말스런 여자

강릉 나들이


주말에 모처럼 가족들과 강릉으로 향했다. 여행의 묘미야 나름대로 다들 다르겠지만, 이번 나들이는 오고 가며 차 안에서 나누는 얘기들이 꽃이었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 난 그날 꾼 내 꿈얘기를 했다. 꿈에 배경은 옛날 친정 식구들이다. 난 뭔가에 심통이 나고 짜증이 나서 내가 가진 돈이 전부 들어 있는 돈주머니를 어느 물가에 집어던져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열딱지가 가라앉자 그 돈주머니가 아깝다. 제발 누가 그 주머니를 다시 주워서 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면서도 꿈일망정 던질 때는 언제고, 다시 찾고자 하는 내가 나도 어이없었다는 꿈 얘기를 차 안에서 식구들에게 했다. 정말이지 꿈일망정 그 돈이 너무 아까웠다고.



그런 얘기를 나누며 우린 대관령 양 떼 목장에 도착했다. 저 두 마리의 양들의 침묵도 지켜보고, 저 양들도 봄날에 풀 뜯어먹을 꿈을 꾸겠지 하면서, 나 또한 저 겨울 목장처럼 황량하고 삭막한 내 마음도 추스려본다.

가족들과 길 떠나면 일정은 늘 그렇다. 절믄 아그들이 보고 싶은 곳과 우리 부부가 보고 싶은 곳은 다르다. 그냥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서 절충할 뿐. 아이들은 마술의 나라인지, 환상적인 입체 공간인 아바타 같은 아르떼 뮤지엄을 찾았다. 우리만 간다면 굳이 그곳엔 가지 않겠지만, 난 그저 이런 가상의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를 맛본 것으로 족했다. 남편은 또 검색 순위에 오르지 않은 틈새를 재빨리 찾아냈다. 강릉 선교장에 가잔다. 당근, 난 최고였다. 왜냐면 이런 곳은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하니 산책하듯, 사색하듯 둘러보며 쉼도 얻는다. 강릉 선교장은 조선시대 궁궐 밖에 있는 가장 큰집이란다. 큰 대문을 들어서면 미로처럼 수많은 문들과 가옥들이 줄줄이 펼쳐졌다. 이런 가옥은 특별했고 인상적이었다. 난 이런 집주인이면 지금으로 치면 대재벌일 거라고, 그때 만석꾼이었다니까.



남편은 예전 직장에서 이곳 담당이 걸핏하면 선교장 가요, 선교장 가요 하던 말이 기억이 났단다. 이곳에서 숙박도 가능하다는데 기회가 될는지. 그리고 우린 맛난 회로 배 터지게 먹고, 밤바다도 걷고, 다음 날은 아점을 먹고 강릉 카페 거리에 갔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찻집 창가에 자리를 잡고, 실컷 멍 때리며, 수다 떨며, 커피향에 취해, 출렁거리는 파도에 취해 바다만 바라보다 왔다.



이번 나들이의 진짜 얘기는 지금부터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 중에 군대 얘기가 나왔다. 작은 애는 지금 보니까 군대 훈련 집합소가 집에서 삼사십 분 거리밖에 안 되더라고. 그런데 그때는 지구 끝이라도 된 듯이 멀고 낯선 세계로 들어간 느낌이었던 건지. 큰 애는 자기는 입영 첫날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단다. 누군가 제대하면 다시 재입대하는 꿈을 꾼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로 자기가 그런 꿈을 꾸더라고. 남편도 한 마디 한다. 입영한 날이 아주 더운 칠월이었는데, 시커먼 흑인들이 눈 깜짝할 시간에 딱 물 두 바가지만 끼얹으라고 했던 그때의 참담한 기분을. 몸도 마음도 다 발가벗겨진 느낌인 건가! 난 이 세 남자가 말하는 그 분위기를 이해하기는커녕 감도 잡히지가 않으니, 난 이거 저거 물어본다. '인간이라는 존재감이 무너지고 내팽개쳐진 무력감 같은 데', 그럼 두 사람은 지금 큰 애가 말하는 입영한 첫날의 그 느낌이 뭔지 느껴지냐고 했더니, 두 사람은 그렇다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순간 뭔지 분위기가 숙연해지고 정적이 감돈다. 저들만이 공유하고 느낄 수 있는 그때의 감정이 다시 찾아온 듯한. 나는 저들만이 공유하는 세계에선 이방인일지라도 두 녀석들이 입영한 날의 그 느낌은 영원히 못 잊을 거라고 했다. 큰 애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저럴까 싶게 마지못해 후미 대열에서 느리 적 느리 적 거리며 걷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작은 애는 훈련소가 집과 가까운 곳이라 방심했는지 늦게 도착했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아이와 나만 차에서 내려 집합 장소로 뛰었다. 곧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서 훈련소 안으로 들어가라는 싸인이 떨어졌고. 그때 작은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순한 녀석이 겁에 질려 왕방울 처럼 그 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어찌 그 모습이 잊힐 리가.



우린 모처럼 차 안에서 그런 얘기들을 나눴다. 그저 팩트들의 나열이 아닌, 우리들의 감정이 묻어났다. 수컷들의 특성인 힘겨루기가 아니라, 어디에 쉽게 내놓기는 불편하고, 나약하고, 무력한 심기가 군대문화를 통해서 살짝 삐져나온 것은 아닐까. 입영 첫날의 그 느낌이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이젠 웃을 수 있는 여유면 좋으련만, 여전히 지금도 정글 같은 현실의 삶은 입영 첫날의 그 느낌과 맞닿아 있는 걸까! 마치 선교장안에 줄줄이 이어져 활짝 열려 있던 작은 문들처럼. 예나 지금이나 삶은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현실의 팍팍함이 군대얘기로 터진 건지. 나 또한 군대체험이 아니여도, 내가 부딪치는 현실의 버거움은 꿈을 통해서 여전히 나의 미성숙한 행동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쥤다.


그럼에도 지금 이 차 안에 감도는, here & now의 느낌은 마치 내가 꿈에 내동댕이치듯 던져버린 돈주머니를 다시 찾은 것 같은 뿌듯한 소중함이라고 식구들에게 얘기했다.


25. 1. 13.

어제 강릉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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