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황금기를 맞이한 우리

by 정예슬

"정말 좋은 날이었다! 아~" 어린이날을 맞아 양양 바다를 만끽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첫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와 남편은 진성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 뭐라고?"



신혼여행 후 곧바로 아이가 들어서며 태교 여행을 갔다 온 이후 제대로 된 여행의 기억이 없다. 첫째 6개월 무렵 삼척에 갔다가 남편이 장염으로 호되게 앓아눕는 바람에 엄청난 트라우마가 생긴 우리는 간간히 친척이나 친구 결혼식으로 지방에 다녀올 뿐이었다.



그랬던 우리 네 식구가 드디어 여행이라는 것을 다니기 시작했다. 6월 1일 지방선거일을 맞이해 1박으로 다녀온 속초 바다에서는 캠핑 의자까지 등장했다. 아들들은 자기 짐을 들고 캐리어를 끌며 차에 오르내리고 식당에 가서는 제 밥그릇 제대로 챙길 줄 아는 어린이가 되었다. 바다에 풀어놓으면 둘이서 어찌나 잘 노는지 뒤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며 눈으로만 따라다니면 된다.



"오빠~ 천국이 따로 없어!"

"그러게. 이런 날도 오네. 그나저나 이 의자 정말 잘 샀다! 특히 목베개가 너무 편해!"



학원 스케줄 신경 쓸 것도 없고 딱히 공부랄 것도 없는 아홉 살과 일곱 살. 아이들을 제법 키운 육아 선배들은 몇 년 남지 않은 지금을 실컷 즐기라고들 한다. 내가 어릴 때를 떠올려보니 맞는 말씀인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주말마다 근교로, 방학에는 더 멀리 여행을 다녔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외식 정도였지 가족여행은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였다. 고로 지금이 우리 아이들과의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의 황금기인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나 홀로 훌쩍 떠나는 여행이 아니기에 살필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네 식구의 살림살이를 챙기고 물놀이를 위한 용품들이 작아지진 않았나 미리 확인하며 숙소와 식당도 알아봐야 한다. 그 모든 것은 늘 엄마인 내 몫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어릴 땐 호캉스를 계획해 짐도 줄이고 조식으로 한 끼라도 생각할 거리를 줄여보려 했다.



그런데 남편과 처음 갔던 호캉스는 그 길로 마지막이 되고야 말았는데... 남편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내리 잠을 자기 시작했고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아우성에 느지막이 저녁 식사를 마쳤다. 부랴부랴 호텔 수영장에 가서는 아주 짧은 시간 겨우 물놀이를 즐겼고 다음날 이른 조식이 무색하게 그는 또다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늘어졌다.



그 이후 친정엄마와 호캉스를 다녀오는 등 모든 여행 일정에 남편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계획을 짰다. 일이 많으니까 공부해야 하니까 그 편이 낫겠다는 암묵적 동의를 받으며. 그런데 남편도 어느 순간 바뀌기 시작했다. 한창 아이들이 자라고 이제 함께 놀러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일까?



작년 가을 강릉 여행을 기점으로 거제도, 양양, 속초까지. 모든 여행을 남편이 먼저 기획하기 시작했다. 6월 마지막 주에는 평창, 다음 달 우리 부부의 생일이 있는 7월에는 제주도, 10월 엄마 생신날에는 부산으로. 이미 숙소와 티켓팅을 마쳤다며 의기양양한 남편을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길어야 5년 정도겠지?"

"좀만 있음 친구랑 놀겠지. 우리 따라다니겠어?"

"그렇겠다. 나중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은 그저 지금을 즐기자!"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

ㅡ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나는 요즘 여행에 진심인 남편을 보며 이 문구를 떠올린다. 그와 9년을 살았는데 아직 충분히 살아본 것이 아닌 상태. 어쩌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한 채 이 세상 떠나고 말겠지. 여행도 식성도 삶을 대하는 방식조차도 계속해서 알아가고 또 새롭게 바뀌며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 나아간다. 결론은, 고마워 남편!





속초 바다에서 즐긴 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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