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코로나 백신 3차를 맞았다. 지금까지 한결같이 두통 증세가 있어서 백신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타이레놀을 먹고 이틀을 거의 누워 지냈다. 남편과 친정 엄마 덕분에 무사히 털고 일어나 주말을 맞이했다. 토요일엔 미뤄두었던 일처리를 위해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무척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서 책 한 권 후루룩 읽을 시간은 내어봤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남편이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가주었다. 덕분에 목소리 녹음을 마치고 유튜브에 두 번째 영상을 올릴 수 있었다. 다음날 시작할 작가 클럽 구상도 여유롭게 하고 공지도 띄웠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밤 운전을 싫어하는 남편이라 해 떨어지기 전에 정확히 집으로 들어온 거다.
"슬이짱~ 밥 잘 챙겨 먹고 있었어? 보고 싶었어~"
"으응..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 뭐야!! 슬이짱은 안 보고 싶었어?"
유튜브 영상 편집하고 책쓰기 관련 도서들 읽고 정리하느라 남편이고 아이들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점심도 식탁에 놓인 고구마 하나로 때웠으니. 그래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나도 보고 싶었지~"
남편이 꼬옥 안아주는데 좋으면서도 미안한 마음.
"그런데 꼴랑 몇 시간 떨어져 있었다고 보고 싶다니?!"
나는 또 이렇게 초를 치고야 마는 경상도 여자다. 경상도라고 다 이런 건 아닌데 괜히 핑계 댈 게 없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우리 슬이~ 우리 슬이~ 노래를 부르며 집안 곳곳을 누빈다. 모나리자 눈썹 뺨치는 옅은 눈썹 때문에 늘 반영구 문신을 해야 하는 내 눈썹을 보고 예쁘다고 하지를 않나. 딸기를 가져와 먹여주다 말고 먹는 모습이 너무 섹시하다고 하질 않나.
"미친 거 같아~~~~~~~ 이상해~~~~~~~"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동시에 빵 터지고 말았다. 둘이 한참을 숨 넘어가게 웃기 시작했다. 꺄하하하하~~~~~ 물결 표시를 쓰면 아재라는데 난 아지매인가 크크크크~~~~~
부부라는 게 참 이상하다. 서로 개똥 취급하며 쳐다도 안 보는 날이 분명 있었다. 마음 깊이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어떻게든 한 이불속에 살 부비며 자려고 애쓴다. 평소엔 두 이불을 쓰는 사이지만. 9년 차 부부가 되고 보니 조그마한 한숨 소리 하나에도 기분이 어떤지 느껴진다. 이런저런 기분에 동조하고 싶지 않아 외면할 때도 여러 번 있다. 어쨌거나 오늘은 미친 듯이 웃고, 눈만 마주쳐도 좋은 날이다. 이런 날도 저런 날도 함께 겪는 게 부부고 결혼 생활이다.
새벽 작가 클럽 미션을 실천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서재방에 들어섰는데 바닥에 편지 하나가 굴러 다닌다. 작년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 썼던 편지인데 아이들이 서랍에서 꺼냈나 보다.
힘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는 관계는 정말로 멋진 일
웨인 다이어의 <인생의 태도>에서 인용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부부야말로 정말 그런 관계가 아닌가! 서로가 가진 다른 힘과 생각을 기꺼이 나누는 사이. 1년 전에 저런 글을 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2월이다. 2021 연초에 서로 윈윈하는 부부가 되자 써놓고 그 해에 가장 많이 싸웠다. 어이가 없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급 반성 모드.
한편으론 8년간 묵혀두었던 감정이 폭발했던 것 같아 잘 짚고 넘어갔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방식이 결코 세련되진 못했지만. 한 사람의 희생으로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 없다. 불편하다고 회피해서는 안된다. 배려하며 꾸준히 요구해야 한다. 특히 집안일에 있어서 말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부분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 집안일에 도통 관심이 없다. 주방을 금남의 구역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분명 맞벌이에 임신까지 한 몸이었지만 늘 주방, 욕실, 베란다 등 집안 곳곳에서 동동거리는 건 나 혼자였다.
신혼집 주방에서 남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설거지를 제일 싫어하고 못 해. 대신 빨래는 할게." 그땐 그게 왜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그런데 생각해 보라. 설거지는 삼시세끼 먹을 때마다 나온다. 빨래는 신혼 때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 까다. 그리고 집안일이 어디 그거뿐인가. 청소는? 요리는? 철철이 옷장 정리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덕분에 남편의 유물 같은 옷들 몰래 많이 버렸지만.
집안일에 육아까지 보태지면서 나는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두들 그건 엄마 몫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2021년은 '나'를 찾는 시간이었고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이 어려서 혹은 정신없이 워킹맘으로 사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다. 2020년 하반기 침상 생활 덕분에 그제야 오랜만에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끊임없이 내가 설 자리를 찾으려 애썼다.
이젠 식기세척기가 도와주긴 하지만 남편도 기꺼이 설거지를 한다. 청소기도 돌리고 집안 곳곳에 고칠 곳이 있으면 연장통을 찾을 줄 알게 되었다. 결혼 9년 만의 쾌거! 너무 당연한 것에 기뻐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불만이 쌓인다. 남편의 사소한 행동에 소란스럽게 응해야 한다. 조금 서툴러도 잘한다 잘한다 엉덩이 두드려가며. 남편도 아내에게 칭찬과 사랑을 듬뿍 전해야 한다. 아내가 이 집에 식모로 들어온 건 아니니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자.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다.
요즘 들어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집안이 화목해야 바깥 일도 잘 풀린다. 부부 관계는 모든 관계의 근원이다. 부부야말로 평생 함께 성장해야 할 존재이며 서로에게 그 누구보다 힘이 되고 기댈 수 있는 사이다. 나도 남편도 각자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되 서로를 배려하며 꾸준히 맞춰 나가야지. 여전히 삐그덕 대는 부분이 많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