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세 시부터 옷을 차려입는 것

by 정예슬

"엄마, 네 시에요?"

"엄마, 네 시는 언제 되요?"


때는 첫째의 7살 겨울 방학이었다. 어느 날부터 아들은 네 시 타령을 시작했다. 한 동안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네 시 즈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이 많아지니 친구들을 기다리는 거겠거니 생각했다.


그날도 네 시 되기 5분 전이라는 말에 첫째는 후다닥 아래로 내려갔다. 큰 일을 마친 둘째를 씻긴 후 베란다로 나가 아들이 뭐하는지 내려다보았다. 첫째는 가지고 간 축구공을 손에 쥔 채 어느 한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미동도 않고 하염없이 앉아만 있는 거다.


"심심하면 그냥 올라와."

"아니에요. 괜찮아요"

"왜 안 놀고 앉아 있어?"

"은0이 기다리거든요."

"응?! 은0이가 언제 올 줄 알고?"

"방금 은0이 엄마가 데리러 갔으니까 이제 금방 와요."

"아..."


매일 네 시에 학원차에서 내리는 은0이를 보기 위해 그렇게도 네 시 타령을 했던 거다.


추운 날씨라 둘째랑 늘 집에 있느라 첫째만 나가서 놀고 올라왔었는데 나중에 은0이 엄마에게 들으니 둘이 오후 네 시에 만나 1시간 내내 술래잡기를 한다는 거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잡기 놀이 아닌가. 하하.


그렇게 겨울 방학 내내 아들은 어김없이 네 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무려 세 시부터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마친다. 그 모습이 꼭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 같다고 했더니 이야기를 들려달란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들떠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보게 될 거야!"

<어린 왕자> 중에서



"은0이 엄마 말이 네가 아파트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너 보려고 뛰어가다가 넘어지기도 한대. 정말 너희 찐. 친.이네~~"

"엄마~ 우린 서로에게 길들여졌어!!"

"뭐어? 하하하하~~~"



사랑은 우리 뇌가 경험할 수 있는 강력한 보상 감정이다. 기분을 좋게 하고 모든 일상을 즐기게 해 준다.

ㅡ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앵거스 플레처



세 시부터 옷을 차려 입고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던 일곱 살 아들은 어느새 아홉 살이 되었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시작을 코 앞에 두고 있는 2월. 새 친구, 새 선생님과 사랑이 퐁퐁 솟아나는 한 해 보냈으면 좋겠다. 앵커스 플레처의 말처럼 사랑은 우리 뇌가 경험할 수 있는 강력한 보상 감정이니까. 그 마음으로 말미암아 매일의 일상이 즐겁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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