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비 내리는 10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처음 만났다. 카카오톡 프로필로 본 그 남자의 첫인상은 솔직히 무서웠다. 다리를 꼬아 그 위에 기타를 걸쳐놓고 인상을 인상을 꽤나 쓰고 있었다.
"인상파 조폭 같았어."
말을 놓기 시작할 무렵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남자는 한참 웃으며 그 사진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가 무척 짧다. 지금도 그렇다. 알고 지낸 11년이라는 세월 중 그의 머리가 길었던 적은 결혼식을 앞두고 있을 무렵이다.
"신랑분 머리가 너무 짧아서 스타일링이 힘들어요. 결혼식 전까지는 더 길러오세요."
웨딩 촬영 헤어메이크업 할 때도 길러오라고 해서 나름 기른 것이라는데 결혼식 당일에도 솔직히 긴 머리라고는 할 수 없는 길이였다. 겨우 끝을 꼬부랑 말 수 있을 정도였던가.
한 달이 안 되는 짧은 주기로 미용실을 찾는 남자다. 염색과 커트 모두 15,000원이라나. 아무리 짧은 머리라 해도 여자라면, 남자 전용 미용실이라도 찾기 어려운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이후 줄곧 5년 넘게 다니는 곳이라 단골 가격이 적용된 점도 있지만...
이 포인트가 참 신기하다. 그녀는 살면서 2년 넘게 꾸준히 찾는 미용실이 없다. 1년도 길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샵을 찾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 평생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정말 모발이 굵고 튼튼하시네요. 숱도 많고요!"
다른 사람의 세네 배에 가깝다는 머리숱. 머리카락 두께는 어찌나 두꺼운지 머리카락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 그래서 펌이 잘 안 먹는다. 잘 된 거 같아도 새 머리가 한 구멍에서 세네 가닥씩 나오기 시작하면 마음대로 굴러간다.
어렵다. 참 어려운 머리다. 미용사가 다루기도 그녀가 매일 손질하기도. 그래서 요즘 그녀는 펌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숏컷을 유지 중이다. 세상 편한데 좀 못나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미모를 더해주는 1순위가 다이어트라면 2순위는 머리빨이 아닌가.
다시 연애시절로 기억을 돌려본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시작은 이랬다. 10월 마지막 날 소개팅이후 애프터 신청을 받은 그녀. 강남에서 영화를 보기로 한다. 세 번째 만난건 빼빼로데이, 그 남자가고백을 했다. 그날로 남녀가 1일이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그즈음 소개팅이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리즈 시절이었다. 하루에도 몇 타임을 뛰었으니까. 딴에는 좀 재봐야지 싶었다. 어이가 없는 건, 직업으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남들이 탄성을 지르던 남자들이 그때의 그녀에겐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걸 바로 콩깍지라고 하는 것일까. 다른 남자들이랑 밥을 먹는데 자꾸만 그 까까머리 남자가 그녀 머릿속에 떠올랐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던 날 밤, 복도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없나 불침번을 서던 중 그녀는 카톡을 보내기로 한다.
"자요?"
"아직 안 자요."
그렇게 시작했던 대화의 끝에 남녀는 보고 싶은 사이가 되었고, 어느새 1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역사적인 날을 만들어 버렸다. 역시 거사는 밤중에 이루어지는 것.
하지만 이 남자, "자요?"라는 물음에 0.1초의 기다림도 없이 답을 했던 건 저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 미안해요ㅠ 어제 일찍 잠들었어요."
다음날 새벽 5시가 되어야 답이 오는 남자. 휴우. 낚인 거지? 요즘에야 미라클 모닝 중이라지만,그 시절 그녀는라이프스타일이 정반대인 남자와 연애를 하며 외로운 밤을 보냈다고? 한다.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싸우기 시작했다.
"뭐야? 잡아놓은 물고기인가? 어째 이렇게 달라져?"
"퇴근하고 소파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그대로 잠들어서..."
급기야 이별을 통보하기도 했다. 매주 주말마다 남녀는 데이트를 한다. 언젠가부터 늘 그녀가 먼저 약속을 잡고 있는 거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만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빠! 별로 날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우리 헤어지자!"
그날 남자는 처음으로 그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남자의 눈물이라니... 하아... 여자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해할 수 있게 이유라도 좀 제대로 말해보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