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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Nov 20. 2023

갑자기 먹고 싶어

이직에 성공한 그 남자!

드디어 그 여자에게 청혼을 할 것인가?


여자는 이제나저제나 결혼 얘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직장이 바뀌었으니 한 두달 아니 100일은 정신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석 달이 넘도록 남자는 결혼의 ㄱ자도 꺼내지 않았다.


애초에 사귈 때부터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었다. 이 얘기도 좀 이상할테지만... 이미 실패 경험이 있었던 그녀였다. 꽤 오래 만난 남자 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결혼을 늦춰야한다는 것이었다. 집에 대출이 많아 생활비와 대출 일부를 같이 갚고 있는 중이었다. 기약도 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함께 해결할 수는 없느냐며 대출이 얼마이길래 그러느냐 물어봤다가 돈돈 거리는 여자가 되었다.


이별 후 대학원 공부에 매진했다. 굳이 결혼을 해야하나도 싶었다. 어차피 엄마도 혼자 계시는데 모녀가 의지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그녀 나이 30살(우리나라 나이로)까지는 꼭 시집을 가야한다고 못박으셨다.


소개팅을 시작했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물어봤던 것은 "사계절을 만나고 마음에 들면 결혼할 의향이 있나요?"였다. 이 말에 그 남자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럼요!" 라고 답했다.


그런데, 왜? 늦가을, 겨울, 봄, 여름이 지나도록 청혼을 하지 않는걸까? 궁금해진 그녀는 남자의 의중을 밝혀보기로 작정했다.


"오빠, 요즘 많이 바빠? 좀 적응은 했어?"

"응 처음보다 좀 나아졌어."

"출퇴근 시간은 길지 않아?"

"예전이랑 비슷해서 괜찮아~"

"그렇구나... 음... 있잖아. 우리 결혼은 언제가 좋을까?"


성격 급한 그 여자는 먼저 결혼 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윽. 남자는 "슬슬 알아봐야 하려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자는 바로 웨딩 박람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후론 일사천리였다. 결혼 얘기가 나오자마자 2.5개월 만에 웨딩 촬영을 하고 5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 여행을 다녀와 이바지 음식을 챙겨들고 시댁으로 향했다. 그 남자의 외할아버지께서 와 계셨는데 태몽을 들려주셨다.


"돼지 한 마리가 새끼 두 마리 젖을 물리고 있는데 옆에 커~~~다란 구렁이가 있는거라. 구렁이가 돼지들을 지키고 있더란 말이여. 아무래도 아들 둘을 낳을건가보다."


"아들 둘이요?!?!!??!"


결과적으로 그 남자의 외할어버지는 외손주를 보셨다. 말씀처럼 2명을...


그 여자는 외할아버지의 태몽 이후 정확히 2달 뒤에 임신테스트기 2줄을 확인했다. 임신이 된 날짜를 따져보면 외할아버지 말씀이 있으신 후 불과 몇 주 뒤였다. 임신 후 입덧이 심한 건 아니었지만 미식거리는 증상은 초반에 계속 이어졌다. 그럴 때면 과자 '아이비'를 혀에 올려두고 있었다.


한동안 입맛이 없었는데 갑자기 옥수수가 먹고 싶었다.


"오빠!! 나 옥수수가 먹고 싶어~~~"

"그래?!?! 근데 어디 파려나..."

"그러게... 시장이 파는 거 같았는데..."


지하철로 3정거장 정도 시장이 있었다. 저녁 8시가 되어가는 시간에 남자는 옥수수를 찾아 나섰다. 엉덩이가 쉬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임신 후 처음으로 먹고 싶다고 한 음식이니 하는 수 없었다.


그리고 2시간 여 뒤, 남자는 만취 상태로 돌아왔다. 워낙 술이 약해서 맥주 두어 모금만으로도 얼굴이 불타오르는데... 거의 한 캔은 다 마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늦게왔어?"

"옥수수가 없었어..... 다 찾아봐도....."

"...... 그럼 그냥 오지 왜 술을 마시고 난리야?"

"그냥....."

"지금..... 나한테 시위하는거야!?!? 옥수수 먹고 싶다고 해서???"


여자는 갑자기 먹고 싶은 걸 어떡하냐고 한 마디를 덧붙이려다 말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남자한테 다시는 뭐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여자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먹고 싶은 게 생기면 혼자 알아서 사먹기로 했다. 꽤 오랫동안 그랬다.


시간이 흘러흘러 둘째가 뛰어다닐 무렵, 여자는 남자에게 말했다.


"나는 옥수수 사건 이후로 오빠에게 뭘 먹고 싶다는 말을 못해."

"옥수수 사건이 뭐야???"

"아니 그걸 몰라????!!!! 신혼  오빠 옥수수 사러 나갔다가 술 마시고 온 날!!"

"응????........아~!!!!!"

"아..아???? 그걸 잊어버렸단 말이야????"

"아니... 그 때 진짜 시장부터 마트 여기저기 다 돌아다녔는데 없었어.... 지금 배고파??? 뭐 먹고 싶어??? 말만해~~~ 내가 배달 시켜줄게!!!!"


세상에나 마상에나. 그 땐 없고 지금은 있는 배달 서비스!!! 덕분에 임신 중인 부부가 싸울 일이 줄어들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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