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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Nov 26. 2023

그게 안 보여

 첫째 임신 중 사극을 좋아하는 그 남자는 한창 <정도전>에 빠져 있었다. 급기야 태명을 정도전의 호인 '삼봉'으로 짓기에 이르렀는데...


"없네요~~"

"네?!?!!?"


 16주에 초음파를 찍었다. 그 주부터 성별을 알 수 있다고 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갔다. 그게 안 보인다는 건 딸이라는 말!!! 그녀는 친구 같은 딸, 예쁘고 애교 많은 딸을 떠올리며 벌써부터 설렜다.


"오빠~ 오늘 병원 다녀왔잖아~ 아까 사진 봤지? 삼봉이 딸인가 봐."


 평소 초음파 사진을 보내면 이런저런 답장이 왔는데 수고 많았다는 얘기 말고 별 말이 없었다. 퇴근한 남자에게 가서 딸이라는 걸 한 번 더 알렸다. 기대와 달리 남자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어라... 오빠! 혹시 딸이라서 속상한 거야?!?!? 딸 사랑은 아빠인데 이상하네..."

 "아... 난 딸은 키울 자신이 없어... 태명도 정도전 호로 지었으니까...."


 가슴 깊이 묵직함이 내려앉았다. 이 남자가 아들을 원할 줄이야!!! 성별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어떡하나... 딸 키울 자신이 없다니 세상에나... 벌써부터 둘째가 걱정되는 그녀였다. 또 아들을 못 낳으면 어쩌지...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든 그 남자가 못마땅해지기까지 했다.


 어느덧 임신 20주가 되어 병원에 가는 날! 초음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어어어 보여요!!!"

"네?!?!?"

"지난번엔 안 보였던 미사일이... 여기 보이시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날 저녁, 4주 전에는 안 보였던 고추가 보이고 남자의 미소도 보였다. 그녀보다 1살 더 많을 뿐인데 남자의 사고방식은 완전 옛날 사람이었다.


 "우리 아들들~~~"


 지금도 아니 여전히 남자는 아들들 사랑이 극진하다. 딸은 필요 없다는 말에 딸인 그녀는 문득 서운해졌다.


 "오빠! 난 딸인데?!?!??"

 "나한테는 아니잖아~~~~"

 "아........."


 남동생, 사촌동생, 친구나 지인들까지 그녀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참 이해가 어려웠다. 보통 아빠들은 딸 낳을 때까지 애를 계속 낳을 거라며 딸 사랑을 드러내는데 말이다. 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 파악이 빠른 게 그 남자의 사는 방식이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가도, 아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에 진심인가 싶다.


 덕분에 물놀이 갈 때 그녀는 참 편하다. 그 남자가 아들 둘 모두 데리고 탈의실로 가야 하니까!! 머리 만지는 재주가 없는 그녀는 요즘 본인 머리도 탈탈 털어말리기만 하면 되는 숏컷 유지 중이다. 더 짧은 아들들 머리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다.


 그땐 그게 안 보여서 좋았는데 이젠 보여서 고맙네? 몇 년이 더 지나 그녀의 키와 비슷해지다가 어느 순간 훌쩍 뛰어넘을 테지... 그땐 그 남자가 아들들에게 어떻게 애정 표현을 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여전히 볼을 부비고 뽀뽀를 해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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