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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Dec 03. 2023

딱 싫어!

"오늘 말고 내일 하면 안 돼?"


"우리 지금 여기 갈까 오빠!?"


 그 여자는 뭐든 즉흥적이다. 새로운 도전에도 활짝 열려 있다. 불쑥 여기를 가자거나  저거를 해보자거나 한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뭐 저렇게 하고 싶은 게 수시로 생기나 갑작스러운 남자다.


 그 남자는 언제나 한결같다고 해야 할까 조금 고리타분하다고 해야 할까. 그냥 똑같다. 주말에도 집에서 TV보다 맛있는 음식은 딱 한 끼만 먹으면 되고 굉장히 빠르게 잠자리에 든다. 아니 거의 수면 상태라고 하는 게 맞다. 신생아처럼. 적게 먹고 수시로 잠이 드는...


 신혼 초에 정말 놀랐다. 사귀면서 그 남자가 아픈 걸 본 적이 없는 그녀는 강철 체력의 남자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조금만 무리하면 곯아떨어지는 남자였고 무리를 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는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주말에 그 흔한 근교 여행 한 번 안 갔다. 서울 도심에서 뱅글뱅글.


 학교 일도 일이지만, 대학원 프로젝트와 논문 쓰기로 정신이 없던 그녀였기에 여행 가자고 조르지 않는? 그 남자가 고마웠다. 그 남자도 이직 준비로 바쁘니 데이트 코스로 책 읽기 좋은 곳을 골랐다. 물론 영화나 전시회를 보긴 했지만 그래봐야 하루 2시간 남짓. 밥 먹고 카페 가서 각자 할 일 하다 헤어지기 바빴다.


 논문 통과를 하고 어느덧 청첩장 인쇄에 들어갔던 초겨울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금요일이었고 난데없이 파전이 당겼다. 명동인지 을지로인지 그 어느매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눈앞에 나타난 파전집.


 "오빠!!!! 우리 파전 먹자~~~~"


 "시간이 늦어서... 저녁 먹고 디저트도 많이 먹어서 또 안 들어갈 거 같은데..."


 세상에 거절을 하다니!! 굉장히 기분이 나빠진 그녀였다. 요즘은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하면 더 길어지기 전에 빠르게 이야기를 하고 푼다. 하지만 그 무렵 그녀는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싫은 티를 내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냉기를 흘렸다.


 '무드라고는 개뿔도 없네. 아 재미없어.'


 처음으로 그 남자가 미워 보였다. 그 무렵 직감했었는데 왜 또 홀려서 결혼까지 한 건지 모르겠다. 당연히 아이가 태어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아기인지 모를 정도로 주말이면 자기 바쁜 그 남자였다.


 어느 날 남자와 대화를 하다 알았다.


 "진짜 대책 없이 행동하는 거 이해가 안 돼. 그럼 뒤처리는 누가 해? 딱 싫어!!!"


 동료 얘기다. 이런저런 일 벌이기 좋아하고 갑작스럽게 계획을 바꾸는 사람. 그 얘기를 듣는 내내 자신과 겹쳐 보였던 그녀...


 "오빠... 그럼 내가 갑자기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 싫겠네?!"


 "... 아니... 슬이짱은 다르지... 음... 사실 좀... 아니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딱 싫어!라는 말이 그녀에게도 해당되는 말 같아서 속이 쓰렸다. 10년을 같이 살았고 연애 기간까지 11년을 조금 넘게 안 그 남자 그 여자는 이제 안다.


 그 남자는 정해진 규칙대로, 이상보다 현실적으로 옳은 일을 하길 원하는 ISTJ이고, 그 여자는 즉흥적으로 감정에 따라 현실보다 이상을 따르는 ENFP라는 것을. 여전히 서로를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보듬어 나가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오늘도 조율하며 산다. 갑작스러운 제안이 그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몇 주 전부터 계속 말하기를 선택한 그녀. 그녀의 갑작스러운 제안이 오기 전에 미리 자신의 계획을 일러주는 그. 순서는 바뀌어도 어쨌거나 서로에게 딱 싫지 않도록 그렇게 맞춰가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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